["탄핵안 부결되면 국회와 청와대가 횃불에 탈 것"]

새누리당 비박(非朴)계 의원 29명이 4일 모여 9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참여키로 결정했다. 이들은 지난 2일엔 박 대통령이 '4월 30일 퇴진'과 '2선 후퇴' 두 가지를 명시적으로 밝혀달라고 요구했었다. '7일 오후 6시'라는 시한도 정했다. 그렇게만 해주면 탄핵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말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탄핵 요구를 보고 입장을 바꿨다. 그래서 대통령이 자신들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야당이 합의해주지 않으면 탄핵 표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야당은 여당과의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9일로 예정된 탄핵 표결은 캐스팅 보트를 쥔 비박계의 참여 속에 치러지게 됐다.

비박계는 이날 "박 대통령이 즉시 퇴진하라는 국민 뜻이 한 치 흔들림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조건 없이 탄핵 표결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을 받들고 국민이 조속히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입장을 바꾼 이유를 밝혔다. "국민의 분노가 청와대를 넘어 국회로 향하고 있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주장을 만장일치 당론으로 만들어 대통령에게 조기 퇴진을 요구하고서 이틀 만에 시위 한 번을 이유로 말을 뒤집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다.

탄핵이든 중도 퇴진이든 박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수 없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탄핵의 경우 국회에서 가결을 장담할 수 없고 헌법재판소의 심리 결과도 100% 확신할 수 없다. 만약 두 절차 중 하나에서라도 탄핵 시위대의 요구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더 심각한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헌재 심리 기간이 얼마가 될지도 알 수 없다. 지금 대통령과 검찰의 주장은 정면으로 맞서 있다. 양측의 사실 다툼으로 헌재 심리가 4월을 넘기게 되면 오히려 탄핵이 박 대통령 임기를 더 연장시키는 결과가 된다. 탄핵 측이 또 헌재 앞에서 당장 결론 내라는 시위를 시작하고 반대 측이 이에 맞서면 탄핵으로 국민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깨질 수도 있다.

탄핵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각 정당이 대선 후보 선정 절차에 들어가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만에 하나 후보를 뽑았는데 헌재가 탄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지금 누가 100% 장담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대통령이 지금 당장 물러나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치른다는 것이 현실성이 있지도 않다. 60일 이내에 각 당이 경선하고 검증하고 유세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탄핵 못지않게 중요한 다음 대통령을 이렇게 졸속으로 뽑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를 망라한 정계 원로들이 대통령이 일정을 정해 조기 퇴진하는 것이 많은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합리적 해결책이라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제 비박계가 입장을 바꿈으로써 9일 탄핵 표결은 현실이 됐다. 이 표결이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면 정말 안 하느니만 못한 선택이 된다. 탄핵 표결이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 되려면 대통령, 여야, 국민 모두가 표결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하겠다는 결심부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