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가 13일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라는 모임을 출범시켰다. 선언문에선 헌법과 법치주의 수호,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자아실현 등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은 '배신의 정치 타파'라는 특이한 내용에 모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마도 세계 정치 단체에 이런 목표를 내건 곳은 없을 것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무슨 '조직원'을 자처하는 듯한 사람들이 헌법과 법치주의, 약자의 권리를 말하니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배신의 정치'는 지난해 6월 국회법 파동 당시 박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지목해 쫓아낼 때 쓴 용어다. '배신의 정치'를 타파한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시키려다 질 수 없는 선거를 망친 것이 4·13 총선이다. 선거 참패 후에도 아집과 독선을 계속하다 탄핵 사태까지 불렀다. 이 사태의 책임자들이 물러나는 대신 당 내 당을 만들고 또 '배신의 정치 타파'를 내세운다. 박 대통령 지지 세력만 보고 가도 지역당 의원 배지는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친박계는 또 원래 7명이던 당 윤리위원회에 친박 의원 4명과 친박 성향으로 추정되는 외부 인사 4명을 추가하겠다고 했다. 당 윤리위의 과반수를 친박계가 확실히 장악하려는 조치다. 지금 당 윤리위에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징계안이 올라와 있다. 박 대통령 징계를 원천 봉쇄하고 나아가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에게 출당 위협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자 이진곤 윤리위원장 등 기존위원들이 일괄사퇴를 선언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 지지층만 상대하기로 작정했으니 못 할 일이 없다는 것 같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경우처럼 시간이 지나면 박 대통령 상황도 반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박의 이런 모습으로는 그 반대로 갈 뿐이다.

친박은 개헌까지 거론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역대 대통령 전원이 말년에 추락했다.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친박이 개입하면 될 일도 안 될 상황이다. 이미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 관심을 돌리기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내 들어 친박의 순수성이 사라진 상태다. 새누리당의 재탄생을 막은 친박이 국가 제도 혁신까지 방해할 모양이다. 새누리당은 해체되거나 해체 수준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친박의 막무가내 역주행으로 모든 길이 막혀 있다. 이대로 가면 보수 정당의 명맥이 끊어질지도 모를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