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개헌 추진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흘 전 여야 3당이 국회에 29년 만에 개헌특위를 설치키로 합의한 게 직접적 계기다. 개헌에 적극적이었던 새누리당 비박(非朴)계 외에도 지금은 국민의당 거의 전체에다 민주당 일부까지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이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정도 필연적인 일이다.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 자리를 놓고 여야가 전쟁을 하듯이 싸우는 지금 권력 체제의 폐해에 국민도 질렸다. '제왕'의 주변과 친·인척은 부패할 수밖에 없고 역대 대통령 전원이 불행해졌다. 최순실 국정 농락 사태를 겪으면서 이 제도가 나라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갖게 됐다. 이런 참담한 일을 겪고도 이대로 그냥 가자고 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권력의 폭주를 막고 견제와 균형의 묘를 살리는 분권형 제도로 가야 한다. 개헌은 꼭 해야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위기인 지금이 적기(適期)다.

문 전 대표 측과 민주당 주류 진영이 반대하는 표면적 이유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소추 심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심은 이미 정권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여기에 다른 변수가 끼어드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기왕에 권력을 잡을 바엔 분권형이 싫기도 할 것이다. 시간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미 이전 국회의장들이 각기 1~2년씩 자문위원회 활동을 거쳐 만들어놓은 완성된 형태의 헌법 개정안이 여러 개 있다. 하자고만 하면 단시간 내에 개헌이 가능하다.

그러나 개헌을 추진하는 여러 정파가 개헌을 고리로 연대하려는 것은 자칫 문제를 흐릴 가능성이 있다. 개헌이 무엇을 해보려다 안 돼 다른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 개헌을 고리로 정계 개편을 해서 권력을 잡아보자는 사람들을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이번에 개헌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앞으로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국민이 순수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친박까지 국정 농락 사태에 책임은 지지 않고 개헌하자고 하는 판이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국민마저 생각을 바꿀 것이다.

위기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이 위기에 헌법을 바꿔 여야 협치(協治)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너 죽고 나 살자'의 당파 싸움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치인들 바람몰이로 될 일이 아니다. 개헌은 어느 정파, 특정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