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맞아 각 언론에서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강세를 보였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해 9월 중순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52.8%)이 문재인 전 대표(25.3%)를 두 배 이상 앞섰지만, 12월 30~31일 시행된 조사에선 문 전 대표(46.3%)가 반 전 사무총장(36.6%)을 앞질렀다(조선일보·칸타퍼블릭 기준). 경향신문 및 문화일보의 여론조사에서도 두 사람의 순위 변화는 동일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여론조사만큼이나 국민들의 마음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확실히 지지하는 대선 주자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를 뽑을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짧게는 몇 달 남지 않은 대선, 유력 주자들이 들고나온 신년 메시지와 함께 그들의 현재 위치와 향후 행보를 짚어봤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산과 하천, 즉 세상을 다시 만든다는 뜻의 '재조산하(再造山河)'를 꼽았다. '재조산하'는 조선의 문신 유성룡이 임진왜란 중에 집필한 '징비록'에 나오는 말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실의에 빠진 유성룡에게 써서 전해준 것으로 기록된다. 문 전 대표는 이 사자성어를 언급하며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들지 않으면 죽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 충신들의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새해 '지지율 성적표'를 받아든 대선주자 중 가장 기세등등한 이는 문재인 전 대표다. 문 전 대표는 주요 언론사 6곳이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강력한 라이벌인 반기문 전 총장과의 양자구도는 물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의 3자 구도에서도 확고한 선두를 지켰다. 그러나 이것이 최근 특검 수사의 본격화로 인한 반사효과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야권의 대선주자가 난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차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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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표는 지지율 상승 추세에 힘입어 '야권 통합'을 다시 외치고 나섰다. 그는 새해 첫날 시민들과 함께 광주 무등산에 올라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함께해야 할 관계"라고 말한 데 이어, 이튿날인 2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두 당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룬 민주정부의 후예"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이러한 문재인의 발언에 대해 "야권 분열의 장본인인 문재인과 손잡을 생각 없다"고 일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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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자정(미국 현지시간)으로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끝낸 반기문 전 총장은 '정치 대통합'을 신년 메시지로 들고 나왔다. 타 대선주자들이 일제히 사자성어를 언급한 것과는 차별된다. 반 전 총장의 '정치적 대통합' 주문은 정진석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와 뉴욕서 독대한 자리에서 나왔다. 반 전 총장은 정치적 대통합은 물론 경제·사회의 대타협도 강조했다. 한편, '대통합'은 박근혜 정부가 주력해 추진했던 기조이기도 하다.

현재 위치

12월 한 달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던 반기문 전 총장의 지지율은 답보 상태에 들어섰다. 최근 불거진 신천지 연루설, 아들의 입사 특혜 의혹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반 전 총장의 강력한 지역 기반인 충청권에서 지지자들의 이탈이 눈에 띈다. 반 전 총장이 아직 적극적인 대선 출마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지지를 드러내지 않는 '샤이(shy) 반기문'의 일부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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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새누리당과 함께 할 거라는 전망이 높았다. 하지만 최근 급격히 상황이 바뀌었다. 반 전 총장 스스로도 새누리당의 입당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대신 그는 '제3당'을 언급했다. 반 전 총장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제3당(third party)'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탈당한 비박계가 만든 '개혁보수신당(가칭)'의 입당을 뜻하는 것인지, 독자 세력인 '친반(親潘)'을 모은 새로운 정당을 뜻하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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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은 바르지 못한 것은 바른 것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는 뜻의 '사불범정'을 신년 사자성어로 제시했다. 이 시장은 2015년에도 신년 사자성어로 '사불범정'을 언급했었다. 올해는 SNS를 통해 "2016년에 국민이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무리를 탄핵했다"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고 밝혔다.

'사이다 발언'으로 지지자를 끌어모으기 시작한 이재명 시장은 한 달 가까이 안철수 전 대표를 누르고 대선주자 3위를 지키고 있다.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평균 10% 정도를 얻어, 두 자릿수 지지율을 굳혔다. 하지만 대선주자 호감도 1위까지 올랐던 11월에 비해선 확실히 그의 기세가 잠잠해졌다. 이 전 시장은 자신의 지지율이 급락한 데 대해 문재인 전 대표 지지자들의 견제 운동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최근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지율이 맨날 오를 순 없다"며 "결혼 날짜 잡아놓고도 마음이 오락가락하지 않냐"고 말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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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변방에서 급부상한 이재명 시장은 새해 첫날 '전형적인' 대선주자 행보를 보였다. 자신이 속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국립현충원과 4·19 묘지를 참배한 뒤 이희호 여사를 예방해 세배했다. 지금까지 남한산성 등에서 성남 시민들과 새해를 맞이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와 동시에, 자신에 대한 각종 의혹 보도를 한 TV조선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폐간시키겠다"는 극단적 발언까지 하고 나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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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제3당으로 만들며 다시 지지율을 굳힌 안철수 전 대표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위침'을 골랐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뜻이다. 안 전 대표는 노력과 인내로 국난을 극복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지만, 문재인 전 대표, 이재명 시장 등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치고 나오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도 보인다.

안철수 전 대표는 2011년 정계에 발을 들인 이후 꾸준히 대선 후보로 언급됐지만, 그와 동시에 꾸준히 지지율이 떨어졌다.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서울시장직을 양보할 때 50%에 가깝던 지지율은 현재 5~7%로 10분의 1 가까이 폭락했다. 게다가 지난해 말 있었던 국민의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안 전 대표가 밀었던 김성식 의원이 낙선하며, 당내에서 '유일한 대선 주자'로 손꼽히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당은 안 전 대표 외에, 제3 지대의 단일후보 또는 반기문 전 총장의 영입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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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대표는 다른 대선 주자들과 달리 '칩거'로 새해를 맞았다. 애초 12월 31일엔 촛불집회 참석, 1일엔 호남 방문을 검토했었으나 돌연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김성식 의원의 원내대표 탈락에 따른 무력시위라는 분석이다. 모습은 나타내지 않는 대신 안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넘어짐에 대하여'라는 시를 올리며 다시 일어서겠다는 속내를 밝혔다. 한편,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은 안 전 대표의 칩거에 대해 "대선 주자가 연말연시 공개 일정을 갖지 않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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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신년 사자성어로 옛것을 뜯어고치고 솥을 새 것으로 바꾼다는 뜻의 '혁고정신'을 언급했다. 그는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치·사회·경제를 좌지우지한 낡은 기득권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덧붙였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은 20% 넘게 치솟았다. 당시 유력 대선 주자였던 김무성·문재인 전 여야 대표를 누르고 지지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위상을 보이지 못하며 박 시장의 지지율은 새해 5%대 아래까지 떨어졌다. 박 시장의 가장 큰 약점은 서울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큰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서울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박 시장은 '바닥 수준'인 자신의 지지율에 대해 "아직 저평가된 상태"라며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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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겠다'고 공언했던 박원순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선 출마 쪽으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 박 시장의 임기는 2018년 6월까지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서울시장을 중도 사퇴해야 한다. 박 시장은 새해의 첫 업무일인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심이 섰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에 나설 경우, 박 시장은 본인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제3 지대나 안철수 전 대표와의 연대를 묻는 질문에 "개인적인 인연은 있지만 합류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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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기 전 새누리당을 탈당한 유승민 개혁보수신당(가칭) 의원은 깨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의미인 '불파불립'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정했다. 유 의원은 신당을 창당한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친박 패권에 가로막힌 상황을 깨뜨리지 않고는 바로 세울 수 없었다"며 2017년을 개혁보수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유승민 의원은 물론 그가 창당한 보수신당도 지금으로선 지지율이 낮은 상황이다. 대권 주자로 거론되긴 하지만 유 의원 개인의 지지율은 1%대에 불과하다. 서민들과 스킨십이 부족한 정치인이라는 목소리도 따라붙는다. 이 때문인지, 유 의원은 경쟁자들이 새해를 맞아 현충원과 소속 당의 신년회에 참석한 것과 달리, GOP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서도 "이제 시작"이라며 대선 전까지 얼마든지 반등의 기회가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현재 위치 ┃

유승민 의원은 우선 창당 한 달도 되지 않은 개혁보수신당의 덩치 키우기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유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의원은 물론이고 반기문, 안철수, 손학규, 남경필 등 유력 대선 후보들과 손잡을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만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에 대해선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이 달라 곤란하다"고 단언했다. 한편, 유 의원이 핵심 멤버로 있는 개혁보수신당이 정체성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과 다른 '보수'가 되겠다는데, 그게 뭔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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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가까워오면서 문재인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양강구도로 점차 굳혀지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대선주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지지층을 모으는 중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남경필 경기지사는 회천재조(回天再造) 등의 신년 메시지를 던졌다. 다만 본 기사에서는 여론조사상의 지지율이 높거나 최근 정치적인 활동을 보여준 인물들 위주로 선정해 언급했음을 밝힌다.

올해 대선주자들의 메시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다시', '새로', '청산' 등이다. 단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메시지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