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열 정치부장

정치권은 대선전을 사실상 시작했다. 이른바 '제3지대'가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상황에서 재 뿌리는 말 같지만 지금 같아선 부정적인 조짐이 너무 많다.

제3지대 추진 세력들은 대략 다음 같은 이야기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중심 세력들이 87년 개헌 후 내내 정권을 주고받았다. 한쪽은 영남과 보수, 다른 쪽은 호남과 진보에 진을 쳤다. 지지자들은 처음에는 기대를 걸고 그들을 밀어줬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정치는 전진하기보다는 후퇴했다. 무슨 일이든 이들이 나라를 반으로 갈라 싸움판으로 만드는 바람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상도동, 동교동, 친노(親盧), 친이(親李), 친박(親朴). 권한과 이권(利權)과 '자리'가 국민이 아닌 그들 뜻에 따라 오고 갔다. 일단 잡으면 상대편은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당하는 진영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을 되찾겠다"며 반대만 했다. 그러면서도 "봐라. 저쪽이 잡으니 이런 일 생기지 않느냐. 그러니 다음엔 무조건 우리만 찍으라"고 자기편 사람들을 겁박해 반사이익을 챙겼다. 그렇게 20여년간 '진영(陣營) 정치'를 강화했다. 어디 상대뿐이랴. 자기 진영 내에서도 '자기 식구'가 아니면 상대 당보다 못하게 대하고, 자기 식구이기만 하면 실력이 없어도 요직을 줬다. 국익(國益)이나 공익(公益)보다 계파의 이해를 우선하는 '패권(覇權) 정치'였다.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나라를 주무르려 한다. 그러니 이번 대선에서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패권 세력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분권형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고 영호남도 손을 잡아야 한다. … 대략 이 같은 주장이 제3지대론자들이 하는 말이다.

공감 가는 부분도 많다. "북한과의 협력은 필요하지만 현금 지원은 안 된다" "우리 사회를 가진 자와 빼앗긴 자로 나눠서 선동하는 건 안 된다" "4대 강 정비를 하더라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안 된다" "검인정 국사 교과서 수정은 필요하지만 국정화 강제는 시대착오다". 이런 말들이 다 진영 정치, 패권 정치 구조에 묻혔던 게 사실이다.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이 주류 세력에 의해 '사쿠라' '변절자' '부역자'로 몰렸던 것도 사실이다. 여건도 나쁘지 않다. 두 정당의 행태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층은 대체로 늘어가는 경향이었다. 노무현과 박근혜 세력 사이에서 이명박이 2006년에 1위로 떠오른 것도, 2011~2012년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서 안철수가 1등을 넘봤던 것도 이들 힘이었다. 작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것 역시 호남이 '문재인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것과 함께 '친박 새누리당'에 실망한 중도 보수층이 가세한 덕이었다.

국회의사당 전경.

이렇게 명분도 있고 유권자 지형도 나쁘지 않지만 국민 대부분은 제3지대에 아직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이런 명분과 한국 정치를 바꾸겠다는 절실함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선에서 이기려고 '잔머리'를 쓰는 것으로만 보인다. 거기에다 '패잔병'으로 보일 소지가 많은 사람들이 더 나서고 있다. "반대한다" "안 된다"만 보이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탄핵당한 정권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까지 "나도 제3세력이요" 하며 숟가락을 얹고 있다.

제3지대가 성공하려면 해법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저들과 다르게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하려는 정치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의 안보·경제 방향은 이런 쪽입니다"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호소해야 한다. 대선 승리에 집착하는 모습도 버려야 한다. 국민이 '아,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때가 탈 대로 탄 사람들이 '좌장'이니 '중진'이니 하며 자기가 뒤에서 다 하고 있는 것처럼 떠들고 다니는 짓은 좀 그만해야 한다. 친박 핵심은 물론 거기 빌붙었던 사람들, "반기문 들어오면 거기로 뭉치면 된다"는 사람들도 뒤로 빠져야 한다. "대선이 곧 있을 텐데 그런 식으로 언제 되겠느냐"고? 그러면 묻고 싶다. 당신들은 지금 어떻게든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계산으로 제3지대 하는 거냐. 만약 그렇다면 안 될 거다. 민심이 움직이면 정권은 따라서 간다. 민심은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당신들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껴질 때야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