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공개 변론과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에 대한 첫 본(本)공판이 5일 헌법재판소와 서울중앙지법에서 동시에 열렸다. 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박 대통령과 '국정 농단' 주역들의 책임을 가리는 헌재와 법원의 재판이 준비 절차를 끝내고 본격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 헌재 탄핵 심판은 사건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지난 3일에 이어 불참한 데다 증인으로 채택된 4명 가운데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과 이영선 행정관 등 3명이 불출석했다. 유일하게 증인으로 출석한 윤전추 행정관도 대부분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 "모른다"고 답변했고, 주심(主審)인 강일원 재판관이 "객관적으로 당연히 알 수 있는 내용도 다 지금 모른다거나 진술할 수 없다고 하는데, 적절치 않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또 대통령 대리인 측 변호사는 이번 사건 수사를 지휘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 삼고 나섰다.

5일 오후 2시 10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최순실 게이트' 관련 1차 공판이 열렸다. 고개를 떨군 최순실(왼쪽부터)씨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각자 변호사와 함께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으로 꼽히는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박대통령측 "촛불, 국민민심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공판에서는 최순실씨가 "억울한 부분이 많다. 밝혀 달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서는 등 검찰과 변호인들이 날 선 설전을 벌였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역시 공판을 통해 범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과 대통령의 측근들이 일제히 탄핵 심판 법정에 불출석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때도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불출석했다. 최씨는 최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소환에 세 차례나 불응하면서 특검 수사에도 반발하고 있다.

대신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예고 없이 청와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검찰 및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혐의 내용을 모두 부인하면서 국민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박 대통령은 40분 가까이 진행된 간담회에서 "(검찰과 특검이 나를)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법정 출석은 피하면서 법정 밖에서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일종의 방어 전략인 셈이다.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을 비롯한 다른 주요 사건 관계자들까지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따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박 대통령 측이 진술 거부 같은 법에 보장된 권리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여론을 자신들 쪽으로 끌어오려는 정치에 기대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날 오전에 있었던 헌재 공개 변론 모두(冒頭) 진술에서도 탄핵 소추 청구인인 국회 측은 20분가량 탄핵 사유를 설명한 반면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피청구인 측)은 그 배가 넘는 50분가량 변론을 이어갔다.

국회 측은 "박 대통령은 비선 실세에 국정을 맡겨 이미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했고,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담당할 자격과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고 했다. 반면 박 대통령 변호인단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이 뇌물이라면 전직 대통령들은 다 뇌물죄에 해당한다"며 "뇌물이든 직권 남용이든 죄가 성립되지 않으며, 특검은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변호인단의 서석구 변호사는 "검찰 수사를 지휘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해서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등 탄핵 소추 사유와 관계없는 발언을 해 재판장인 박한철 헌재소장으로부터 두 차례 제지당하기도 했다.

한편 헌재는 증인 소환장을 받지 않기 위해 잠적한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을 19일 다시 소환하고, "10일 이후에 불러 달라"며 불출석 사유서를 낸 이영선 행정관은 12일 증언대에 세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