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측 "예수도 군중재판에 십자가... 촛불, 민심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가 5일 오후 2시 1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공판에 처음으로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최씨는 지난달 19일 공판준비기일에 한 차례 출석했지만,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은 준비기일에 나오지 않다가 본(本) 공판인 이날 나온 것이다.

상아색 수의(囚衣) 차림의 최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법정에 들어섰다. 그러나 법정을 촬영하는 언론사 카메라가 나가자 수시로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와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재판에 임했다. 면도도 못한 듯 초췌한 모습의 안 전 수석은 법정에 들어서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 전 비서관은 입을 꼭 다문 채 꼿꼿이 앉아 가끔 변호인과 말을 주고받았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들을 법정에 제시하는 '서증(書證) 조사'를 위주로 5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재판에서 최씨 측과 검찰은 시종일관 신경전을 벌였다.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 측도 혐의를 부인한다는 취지로 모두(冒頭) 진술을 하면서 최순실씨에게 불법 유출된 정부 문서들이 담긴 태블릿 PC의 증거 능력을 문제삼기도 했다.

최씨는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가 "혐의를 전부 부인하는 게 맞느냐"고 물었을 때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하고 답했다. 그랬다가 다시 김 부장판사가 "추가 진술할 사항이 있느냐"고 묻자 "억울한 부분이 많아서 밝혀지기 바란다"고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경재 변호사는 검찰이 공소사실을 담은 문서를 법정 내에 설치된 스크린에 띄워 설명하려 하자 "증거로 밝혀져야 하는데 사실인 양 발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막아섰다. 이 변호사는 "검찰이 영장실질심사 때는 최씨와 안 전 수석이 공모했다고 하더니 둘이 잘 모르는 사이로 드러나자 대통령을 끼워넣었다"고 했다.

그러자 검찰은 "대통령이 공범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며 "공소장을 적을 때는 국격(國格)을 생각해서 최소한의 사실만 기재했다"고 맞섰다. 검찰은 "증거 기록을 자세히 보면 최씨가 어떻게 나랏돈을 속된 말로 '빼먹으려' 했는지 나와 있다"며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도 밝히지 않으면서…. 금도(襟度)를 넘은 변론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안 전 수석 측으로부터 압수한 '압수 수색 대응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휴대폰 통화 내역은 연락처를 삭제해야 하고, 차명폰을 사용해도 상대방이 모두 차명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보안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적혀 있고, "메시지나 카카오톡 등을 다 지우라. '휴대폰 (기기) 교체가 정답'"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검찰은 또 "(휴대폰을 파기하려면) 휴대폰 우측 3분의 1 지점을 강하게 눌러 부수고, 집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돌리라" "(차량) 내비게이션, 블랙박스는 교체하면 되지만 CCTV나 하이패스는 답이 없으니 별도의 소명(疎明)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쓰여 있다고 소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뻔한 사실도 부인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한 최씨의 1~3차 피의자 신문 조서에 따르면 검사가 최씨에게 TV조선이 특종 보도한 '박 대통령 의상실'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동영상에 등장하는 윤전추 행정관에 대해 묻자 최씨가 "처음 보는 여자"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최씨가 다니던 헬스클럽 트레이너였던 윤 행정관은 최씨의 추천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최씨는 이어 자신이 소유한 회사인 '더블루K'나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고 했고, "청와대에 간 일도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이날 법정 내 스크린에 띄워 공개한 신문 조서에는 최씨가 대부분의 질문에 "전혀 모른다" "저로서는 알 수가 없다" "처음 듣는 얘기다"라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 검찰은 이 같은 답변을 재판부와 방청객 등이 알아보기 쉽도록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