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일본은 부산 소녀상 설치를 문제 삼아 주한 일본 대사를 일시 귀국시키기로 했다. (오른쪽 사진)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은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류 제한 등 각종 보복에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가 연초부터 중국·일본으로부터 동시에 외교적 압박을 받는 난국에 빠졌다.

한국의 리더십 공백 상태를 틈타 중·일이 각각 경제와 금융을 무기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소녀상' 문제를 자기들 뜻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대통령 직무 정지로 말 그대로 속수무책 상태이고, 국정에 책임감을 가져야 할 국회의 다수 의석의 야당들은 수습책을 찾기보다는 이를 정권 공격용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6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총영사를 일시 귀국시키기로 한 데 이어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와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된 데 항의하기 위한 조치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나가미네 대사를 외교부로 부르고 일본 측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일본 정부는 당분간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12월 양국 간에 맺은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깨진 셈이다.

다른 한쪽에선 중국의 사드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한류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금지한 한한령(限韓令), 중국 진출 롯데 세무조사, 한국행 전세기 운항 불허, 한국산 배터리 보조금 제외 등 보복의 종류와 분야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중·일이 이 같은 강수(强手)를 들고 나온 것은 한국이 대통령 탄핵 사태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되고, 정치권은 사분오열돼 있다는 점을 적극 이용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주변국들과 이런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면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 안보 최대 위협인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공조 체계에도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일의 압력에 밀려 타협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이고,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감정과 직결된 문제다.

정부 소식통은 "사드 배치나 위안부 합의 모두 국민이나 야당에 대한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를 되돌리거나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복합적인 갈등에 과거처럼 미국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보호무역주의의 기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이 같은 갈등에 깊이 발을 담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교부가 지난 4일 신년업무보고에서 "올해는 냉전 종식 후 가장 엄중한 외교 안보 환경이 전개될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결국 이 같은 외교 안보 격변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정치권이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거국적인 합의를 통해 정치·외교·경제·무역을 총망라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은 "국내적 이념 갈등은 국내에서 잘 봉합하고 국제적으로는 일치된 대응을 보여줘야 한다"며 "정파적 이익 혹은 대중의 감정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에 따라 외교를 하게 되면 결국 그 비용은 우리가 다 치르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