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에선 로봇이 약을 짓는다. 2015년 9월 이 병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의약품 조제 로봇'을 들여와 암병원의 항암 주사제 조제 업무에 투입했다. 이탈리아 루치오니 그룹이 개발한 조제 로봇 '아포테카 케모(APOTECA Chemo)'는 하루 8시간 일하며 독한 물질이 섞여서 조제가 까다로운 항암제 30개 품목을 100건씩 만들어 내고 있다. 병원은 "외래 암환자 처방 4건 중 1건을 처리한 셈으로, 실력 있는 약사 두 명 몫을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효과가 좋자 조제 로봇 3대를 올해 안에 더 도입하기로 했다.

삼성서울병원이 2015년 도입한 의약품 조제 로봇 ‘아포테카 케모’.

환자들이 전문의가 내린 처방보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의사 '왓슨(Wat son)'의 처방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사실이 의료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보건의료계 전반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대체 가능성은 약사 68%, 간호사 66%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의사 '왓슨(Watson)'이란?]

가장 긴장하는 곳은 약사 사회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내놓은 '인공지능·로봇의 일자리 대체 가능성 조사'에서 2025년에 사람을 대체할 가능성이 큰 직업을 분석한 결과, 보건·의료 분야에선 약사·한약사가 68.3%로 대체 가능성이 가장 컸다. 이어 간호사 66.2%, 일반의사 54.8%, 치과의사 47.5%, 한의사 45.2%였고, 전문의가 가장 낮은 42.5%였다. 논리적 분석이나 창의력에서부터 사람 파악 능력과 설득 능력 등 5가지 항목 44가지 역량을 따져 분석·비교한 결과다. 의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하다면 약사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지 고민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박가열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약사나 간호사 등은 의사 처방이나 지시에 따른 업무도 많은 데다 상대적으로 기계적인 업무 비중이 높아 대체 가능성이 크다고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약사계 곳곳에서는 기술 발전으로 노동력 대체 현상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예컨대 동네 의원부터 대형 병원들까지 조제 자동화기기(ATC)가 등장했다. 이 기기를 간단히 조작하면 복약 지도서를 출력해주고 있다. 미국·일본의 대형 병원에선 항암제 등 정맥주사를 만드는 조제로봇 활용이 일반화됐고, 대형 약국들도 자동조제기를 설치해 활용 중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그러나 로봇·인공지능이 가져온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주장도 많다. 방대한 지식을 저장했다가 찾아내는 측면에서는 인공지능을 뛰어넘을 수 없더라도 환자를 대면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강민구 우석대 약대 교수는 "우리나라 약사 업무 상당 부분이 단순 조제에 치우친 건 사실"이라며 "지식적인 부분은 인공지능에 맡기고, 환자 건강 상태뿐 아니라 감정·가족 관계 등을 이해하고 상담하는 대면 서비스에서 약사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박인춘 전 부회장은 "단순 노동은 로봇에게 맡기고 환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지금까지는 병원에서 가까운 약국으로 갔다면, 앞으로는 환자와 더 많이, 더 잘 소통하는 약국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