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5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별도 세력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하면서 '대선 전(前) 개헌'을 주장하고 나왔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개헌 방향에 대해 분권형 권력 구조 개편과 함께 대선·총선 주기(週期)를 맞춰야 한다며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 방침도 밝혔다. 일단 독자 세력을 구축해 '반(反)문재인' 세력을 제3지대에 모을 '개헌 연대'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특히 대선 전 개헌에 유보적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하며 그의 안보관 등을 문제 삼았다. 설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답보 내지 소폭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문 전 대표와 각을 세우며 양자 구도 만들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관훈토론회에서 "패권과 편 가르기에서 분권과 협치의 좋은 정치로 가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개헌은 대선 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16일 기자들에게 "대선 전 개헌은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을 때와는 태도가 달라졌다.

반 전 총장은 권력 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기 위해 외교·안보·통일 등 대외 문제는 경험 있는 사람이 확고하게 리드하고, 대신 경제·사회 문제는 총리가 전권을 가지고 협치하는 게 좋다"며 분권형 이원정부제를 제시했다. 반 전 총장은 "대통령 중임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선과 총선 주기를 한꺼번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차기 대선과 2020년 21대 총선 시기를 맞추자는 주장이다. 이는 다음 대선이 조기에 치러질 경우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줄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반 전 총장은 그러면서 민주당과 문 전 대표가 개헌에 유보적인 데 대해 "민주당에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문 전 대표 개인 의사가 탐욕스럽게 적용돼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개인 의사라면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는 "제1당의 대선 후보가 될 분이 개헌은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패권"이라며 "박근혜 패권에서 문재인 패권으로 넘어가는 상황을 국민이 원한다고 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도 했다. 정치권에선 "반 전 총장이 이른바 '제3지대론자'들에게 개헌 연대에 나서자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문 전 대표를 '호헌(護憲) 세력'으로 가두려는 전략"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정치인의 말을 어떻게 다 믿겠느냐"면서도 "지켜보겠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문 전 대표의 안보관도 문제 삼았다. 그는 '문 전 대표를 평가해달라'는 패널 요청에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가까이 지낸 사이고 조용히 자기 할 일 하는 곧은 분"이라면서도 "(대선) 경쟁자적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통령이 되면 동맹인 미국보다 평양에 먼저 가겠다'는 문 전 대표의 발언을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문 전 대표가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찬반에 대한) 말씀이 오락가락하고 (2007년)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을 표결할 때 북한의 입장을 들어보고 결정하자 했다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내용에 국민은 불안해한다"고도 했다. 그는 문 전 대표에게 지지율이 뒤진 데 대해선 "문 전 대표는 350m쯤 가 있고 나는 (대선 레이스 준비가 늦어) 10m도 못 가 있다"면서 "최순실 게이트 전에는 내가 앞서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국민이) 기존 정권과 저를 같이 보는 경향이 있구나 의식하고 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이 당선되면 새누리당 정권의 연장'이란 주장에 대해선 "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일한 적이 없는 한 점의 때도 묻지 않은 신인 정치인"이라며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 전 총장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보수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현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 대해 "국민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했다. 개성공단 재개 시점에 대해선 "북한이 핵 포기에 대한 진지한 자세뿐 아니라 행동을 보이기 전에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표가 최근 "개성공단은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 다만 2007년 10·4 남북 공동 선언에 대해선 "NLL(북방한계선) 논란이 있지만 큰 틀에서 역사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