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보름, 대혼돈에 빠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아프리카 7개국 출신을 일시 미국에 입국 금지하는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내린 데 대해 지역 단위 법원이 이 명령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결정을 잇달아 내리고, 공무원 사회에서 불복종 움직임이 일어나는 등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행정명령이 정당하다'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올리는 등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일(현지 시각) 연방정부 부처 공무원 180명이 트럼프 행정부의 부당한 지시에 항거하기 위해 '시민 불복종 워크숍'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워크숍은 민간 전문가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시민 불복종 운동 방법을 알려주는 행사다. 일부 공무원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트럼프가 임명한 상급자들이 어떤 식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바꾸려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지난 29일에는 민주당 소속인 주(州) 법무장관 16명이 공동 성명에서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금지하는 판결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안드레 비오테 주니어 LA연방법원 판사는 지난 31일 "연방 공무원들이 미국에 들어오려는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을 공항에 구금하거나 본국으로 소환해선 안 된다"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이 결정은 예멘 출신 28명이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이민 비자를 받은 본국 가족이 미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됐다"며 낸 소송 과정에서 나왔다. 앞서 지난 29일에도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 앤 도널리 판사가 7개국 국민의 본국 송환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소송전도 이어지고 있다. ABC방송에 따르면 워싱턴, 뉴욕, 버지니아, 매사추세츠 등 4개 주를 포함해 최소 13곳에서 반이민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입국 금지국인 이라크 출신이라는 이유로 영주권자인데도 미국 공항에 억류됐던 무함마드 타우피크 CNN 프로듀서도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애플의 팀 쿡 CEO도 지난 3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행정명령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불법 체류 이민자 보호에 나서는 도시도 나오고 있다. LA시의회는 지난 31일 LA 지역 도로변 노점상에 허가증을 주고 합법적으로 영업을 하게 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의결했다. 불법 체류자가 생계를 위해 불법 노점상을 운영하다 경범죄 전과로 추방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법안이다. LA타임스는 "이 법안이 트럼프의 '범법 이민자 우선 추방 정책'에 완충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딸 제나 부시 헤이거는 트위터에 9·11 직후 무슬림에 대한 혐오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화합을 강조한 아버지의 연설문을 올리면서 "지금 미국은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모든 인종과 종교를 수용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고 썼다. 교황청 산하 신문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1일자 신문 1면에 '폐쇄는 진보가 아니다'는 사설을 실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했다.

일부에선 '트럼프 탄핵'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멕시코계인 호아킨 카스트로 연방 하원 의원(민주당)은 1일 "트럼프가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이민자를 추방하면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1일 트위터 글에서 "사람들이 (행정명령을 놓고) 미국 입국 금지령이니 뭐니 하는데,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하지만 이것은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고 썼다. 비판 여론에도 반이민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트럼프에 대해 "나르시시즘에 빠진 일 중독자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