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1시 서울 동대문구 한 찜질방 로비 한쪽엔 여행객들이 맡겨놓은 캐리어들이 쌓여 있었다. '샤워 후 탕에 들어가세요' '다른 고객들을 위해 작은 소리로 대화하세요' '수면실에는 가운을 입고 들어가세요' 같은 안내문이 중국어로 병기돼 있었다. 푸드코트에서는 '치맥(치킨+맥주) 세트', '떡맥(떡볶이+맥주) 세트'가 '코리안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었다.

전날 동대문 일대에서 쇼핑을 마치고 밤 10시쯤 찜질방에 들어온 중국인 나나메(여·27)씨는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든 후 함께 온 친구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그는 "웨이보에 친구가 올린 사진을 보고 찾아왔다"며 "호텔보다 값도 싸고 마사지도 받을 수 있어서 여기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남은 여행 일정은 가로수길과 이대 앞 등에서 보낼 거라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 구성이 단체 관광에서 개별 관광으로 옮겨오면서 찜질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 중 약 62%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지 않고 자유여행을 한 싼커(散客·개별 관광객)였다. 최근 디지털 마케팅 회사 '펑타이'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검색한 서울 관광지를 조사했더니 홍대 앞(1위), 이화 벽화마을(5위), 건대 커먼그라운드(11위), 동대문 찜질방(15위) 등이 인기였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24시간 찜질방에 여행 온 중국인 관광객들.

서울 이태원 역시 중국인 개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태원 해밀턴호텔 맞은편에 있는 사우나는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 촬영 장소로 알려지면서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카운터에서는 조선족 출신 직원이 유창한 중국어로 손님들을 받고 있었다. 8일 오후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중국인 위장(35)씨는 "여행사에서 정해주는 일정보다는 한국 드라마에서 본 장소들을 찾아가고 싶어서 가족과 함께 왔다"며 "중국어를 하는 직원들이 있어 음식을 주문하거나 목욕을 하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사우나 이봉훈 매니저는 "춘제(春節·중국 설) 같은 대목엔 중국인 여행객이 한 달에 1500명까지 온다"며 "단체 관광객들은 주로 낮에 목욕 체험을 하고 떠나고, 개별 여행을 온 이들은 이태원 밤 문화를 즐기고 새벽 시간대에 와서 눈을 붙이고 간다"고 했다.

주로 20~30대이면서 합리적 소비를 하는 싼커들이 찜질방에 몰리는 또 다른 이유는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전체 여행 경비 중 25%를 숙박비로 쓰는 데 비해 중국인 관광객은 경비의 15%를 숙박비에 쓴다. 인천공항·김포공항에서 공항철도로 한 번에 이어지는 홍대입구역 일대 찜질방도 인기다. 저녁에 한국에 도착해 홍대 앞으로 와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은 뒤 다음 날 홍대 일대를 여행하기 좋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찜질방을 이용하는 내국인과 중국인 여행자 사이에 갈등도 생기고 있다. 찜질방 주인들은 내국인 손님과 중국인 손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올해 초 서울 영등포에 있는 찜질방에 갔던 주모(33)씨는 "시끄러워서 잠이 깼는데 찜질방 한쪽에서 중국인들이 마작을 하고 있었다"며 "놀러 온 사람들에게 불평하기가 부담스러워 그냥 나왔다"고 했다. 찜질방을 운영하는 이모(56)씨는 "이용 방법을 잘 모르는 중국 손님이 샤워를 하지 않은 채 탕에 들어와 다른 손님들이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중국인 손님들로 인한 매출이 더 큰 상황이기 때문에 항의하는 손님은 잘 달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주시에 있는 한 사우나는 아예 중국인 관광객을 받지 않기로 했다. 이곳 매니저는 "여행사에서 단체로 중국인 관광객을 데리고 오니 기존 손님들이 떨어져 나가는 게 눈에 보였다"며 "두세 명씩 오는 개별 여행자는 거절할 수 없어 중국어로 쓴 주의 사항을 거듭 일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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