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친구를 원하면 '나 변호사 친구 사귀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신촌역 부근 한 카페에 20여명이 모였다. 모두 20~30대로 대부분 대학생과 직장인이었다. 이 모임은 요즘 20~30대에게 유행하는 인맥(人脈) 동아리였다. 말 그대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인맥을 쌓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모임을 주최한 유모(32)씨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인맥의 중요성을 느껴 모임을 만들었다"며 "만약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다음 모임에는 안 나와도 된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 어색해하던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고 자기소개를 했다. 일본 도쿄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임모(25)씨는 "일본에서 유학하느라 한국 소식을 전해줄 친구가 별로 없다"며 "친구 사귀려고 나왔다"고 했다. 그는 "혹시 도쿄 오실 일 있으면 꼭 연락 달라. 일본 현지인만 아는 명소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대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이모(29)씨가 "취업 준비하는 분들께 드릴 팁이 꽤 있다"고 하자 참가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들은 자기소개를 마친 뒤 2~6명씩 조를 이뤄 2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이후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조를 편성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예정됐던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인맥 동아리는 여행이나 스포츠 같은 공통 관심사로 뭉치는 기존 동호회와 다르다. 아무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얘기를 들으며 견문(見聞)을 넓히고, 서로 필요한 인맥이 돼주자는 취지다.

인맥 동아리는 소셜미디어(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고 가끔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회원 가입이나 탈퇴 절차는 따로 없다. 필요하면 참석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나와도 그만이라는 식이다. 오프라인 모임은 주로 세미나카페 같은 곳에 모여 명함을 주고받은 뒤 2~3시간 동안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각자 명함을 올려놓은 뒤 서로 원하는 사람끼리만 연락해서 만나는 모임도 있다. 정(情)보다는 서로의 필요 때문에 만나기 때문이다. 일부 동아리는 의사·법조인 같은 전문직 중심의 'VIP 회원'끼리 별도 모임을 주선하기도 한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는 '인맥'을 키워드로 하는 모임이 100여개 있다. 일부 동아리는 회원 수가 수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인맥 동아리 회원은 회사원이나 공무원, 취업 준비생과 대학생 등 다양하다. 가입 목적은 회원별로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인맥이 최고의 스펙(자격 요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30대 변호사는 "고시 준비하느라 친구를 폭넓게 사귀지 못했는데, 막상 변호사가 되고 보니 아는 사람 소개로 일감을 따는 경우가 많더라"며 "인맥 동아리에서 만난 회원들이 미래의 고객이 되줄 것으로 기대하고 선(先) 투자하는 기분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박모(여·25)씨는 인맥 동아리에서 만난 대기업 직원으로부터 자기소개서 첨삭 지도를 받은 뒤 해당 기업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박씨는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서류 전형을 통과하지 못했는데 인맥을 쌓아 맞춤식 지도를 받으니 한 방에 통했다"며 "취준생에게 짱짱한 인맥은 어느 스펙보다 값지다"고 했다.

지난해 한 비영리단체가 16~74세 3500명에게 '개인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고 설문조사한 결과 사회적 인맥이 1위로 꼽혔다. 부모의 경제 수준이 2위였고, 본인의 노력은 3위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최순실·정유라 사태를 지켜본 젊은 세대가 '인맥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면서도 "인맥 동아리는 실력보다 인맥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의 쓸쓸한 자화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