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일본 도쿄의 한 서점. 이날 새벽부터 하루키 신간을 찾는 독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선인세(계약금) 20억원 정도까지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8)가 4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가 지난 24일 현지 발매되면서 국내 출판계도 들썩이고 있다. 이번 작품은 이혼한 30대 남자 초상화가가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의 그림을 두고 겪는 에피소드로, 성적(性的) 코드 등이 강렬해 기존 하루키 팬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국내 출판사들은 출간 기회를 얻기 위한 전략 마련에 들어갔고, 판권 입찰 마감 시한인 이달 말까지 모든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교보문고의 2005~2015년 집계 결과에 따르면, 10년간 최다 판매 작가는 하루키였다. 특히 2010년 작 '1Q84'가 200만부가 팔려나가는 등 흥행력이 입증된 만큼, 그간 하루키의 작품을 출간했던 문학동네·문학사상사·민음사·비채(김영사) 등 출판사 대부분이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1·2부로 분권된 이번 책은 일본에서 지금까지 130만부를 찍었다. '1Q84'의 경우 첫 출간 당시 70만부, 2013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50만부를 낸 바 있다.

보통 하루키의 소설은 현지 출간 후 일주일 내로 에이전시로부터 책을 받아본 뒤 내용을 검토해 입찰 여부를 결정한다. 이후 마케팅 계획서와 기존 출간 목록을 함께 제출한다. 한국 판권 대행사 신원에이전시 측은 "하루키가 '1Q84'부터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며 "현지 출판사 신초사(新潮社) 직원들도 출간 전 극소수만 책을 받아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4월 내로 출판사가 결정되면 책은 여름쯤 국내 출간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키의 선인세와 관련된 출판사 과열 경쟁은 늘 논란이었다. 비공개라 정확한 금액은 확인되지 않지만, 이전 작품에서 15억원을 넘겼다는 얘기도 나왔다. 일각에선 "하루키 신간 발매는 침체된 출판 시장의 큰 이벤트인 만큼 20억원 가까이 쓰는 곳도 나올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국내 관행대로 작가 인세를 10%로 놓고 단순 계산하면, 책값이 1만5000원일 때 130만부는 넘게 팔아야 적자를 면할 수 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선인세 경쟁은 개방된 경쟁 체제하에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시가(時價)를 스스로 높여 손해를 감수하는 '제 살 깎아 먹기' 비판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순히 금액만 높게 써낸다고 낙점되는 건 아니다. 비채 관계자는 "디자인 콘셉트와 홍보 기획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하루키 본인이 최종 결정한다"고 말했다. 민음사 관계자는 "하루키는 매번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꼽히지만 아직까지 '대중소설가'라는 이미지가 짙다"며 "그의 문학성을 돋보이게 할 출판사를 선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틈새 공략에 나선 곳도 있다. 현대문학의 경우 지난해 하루키의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출간을 따낸 만큼 에세이집 공략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만큼 이달쯤 나올 에세이 '번역의 모든 것' 계약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