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현실이구나, 내가 뭘 몰랐구나…. 이렇게 그냥 망하게 되는 건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여성복 디자이너 유나 양(39)은 2011년 봄, 맨해튼 미드타운 아파트에 홀로 앉아 이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2010년 봄, 뉴욕패션위크에 서자마자 '놀라운 신예'라는 평을 들었던 그다. 데뷔 컬렉션은 유명 패션 일간지 '우먼스웨어데일리(WWD)'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고, 같은 해 2월 '뉴욕매거진'과 '맨해튼매거진'은 유나 양을 '차세대 스타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패션학교 마랑고니를 거쳐 이탈리아 패션 회사에서 일하다가, 영국 런던 세인트마틴스쿨로 건너가 다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와서 치른 첫 컬렉션이었다. 그런데 박수 세례부터 받게 된 것이다. 유나 양은 "그때 나는 사람들이 칭찬해주니 '와, 뉴욕에서 성공하는 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미국은 역시 기회의 나라구나!' 했었죠. 그러다 세게 얻어맞은 거고요."

2011년 세 번째 컬렉션을 치렀다. 결과는 혹평, 그 자체였다. '유나 양이 매력을 잃었다' '장점이 도드라지지 않는 쇼였다' 같은 평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미국은 냉정한 곳이거든요. 두 번째까지는 신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봐주지만 세 번째부터는 이 디자이너가 정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평가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칭찬에 마냥 들떠서 쇼 준비를 치밀하게 하지 못했어요. 망할 수밖에 없었죠(웃음)."

쇼가 끝나고 남은 건 업계의 차가운 무관심, 그리고 주문이 끊겨 조용해진 사무실뿐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전화기가 울렸다. 20세기폭스사의 부사장 줄리아 페리였다. "지금 당신 사무실 근처인데, 잠깐 옷 좀 보러 가도 돼요?" 페리는 사무실에 들러 유나 양의 옷을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혹시 영화 의상에도 관심 있어요?" 유나 양은 그렇게 영화배우 리스 위더스푼과 로버트 패틴슨이 출연하는 영화 '워터 포 엘리펀트(Water For Elephants)'의 홍보용 의상을 덜컥 맡게 된다. "죽다 살아난 순간이었죠. 그 후로도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녔지만요(웃음)."

지난 2월 유나 양은 어느덧 15번째 뉴욕 컬렉션 쇼를 치러냈다. 그 사이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유나 양(Yuna Yang)'은 그래미상 수상 가수 캐리 언더우드와 톱 모델 켄달 제너 등이 즐겨 입는 고가(高價·하이엔드) 상표로 자리매김했다. 이젠 미국·유럽·중동을 비롯, 대만과 일본의 유명 백화점 명품관에서 그의 옷이 팔려 나간다. 작년에는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이자 유명 현역 모델 메이 머스크(68)가 숱한 유명 디자이너의 구애를 마다하고 유나 양이 만든 드레스를 입고 메트 갈라(Met Gala) 행사에 나서 화제를 뿌렸다. 최근엔 일본 오사카 한큐백화점이 '촉망받는 해외 디자이너'로 유나 양을 꼽으면서, 오사카에선 가장 매출 경쟁이 치열하다는 3~4월 벚꽃 시즌에 내놓을 특별 디자이너 한정판 의상 제작을 유나 양에게 맡겼다. 한국 디자이너로선 처음 있는 일이다. 유나 양은 "디자이너랍시고 스케치나 하고 있었다면 매번 일을 따낼 수 없었을 거다. 나는 요즘도 종종 매장에 하루 종일 서 있다가 오곤 한다"고 했다.

유나 양이 디자인한 벚꽃 의상은 농밀하다. 검정 배경 위로 진분홍 벚꽃잎이 휘날린다. 투명하고 하늘하늘한 기존의 벚꽃 이미지를 배반한다. 29일 일본 오사카 한큐백화점 우메다 본점 특별 매장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앉은 유나 양은 “일본 고객들이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다고 좋아하더라”고 했다.

내 옷이 팔리는 이유

―디자이너가 왜 매장에 서 있죠?

"미지의 새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치열한 장소잖아요. 쇼나 파티에서 만나는 고객은 다들 초대장을 들고 와서 제게 인사를 하니까, 격식을 갖추고 칭찬부터 해요. 그건 진짜 평가가 아니에요. 매장은 달라요. 여긴 지갑을 열고 돈을 내는 곳이잖아요. 다들 얼마나 솔직하게 속마음을 꺼내 보이는데요. '마음에는 드는데,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해서 안 살래요'라든가, '프린트는 좋은데 소재가 별로여서 고민되네요' 같은 진짜 얘기를 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 디자이너가 일을 제대로 하려면 매장에도 자주 서 있어 봐야 하는 거죠."

―밑에 있는 직원에게 모니터링 맡기면 되지 않나요.

"제가 상사인데, 제가 듣기 싫은 말을 100% 그대로 전할까요(웃음)? 제가 와서 들어야 진짜예요. 29일부터 한큐백화점 우메다 본점에 제 옷이 걸리는데 여기도 궁금하잖아요? 뉴욕에서 도착한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오사카 매장에 와서 하루 종일 직원들 사이에서 서 있었어요. 처음엔 바이어·매니저부터 판매 사원까지 다들 안절부절못하더라고요. 디자이너가 매장에 서 있으니까요(웃음). 아무렴 어때요, 그 덕에 진짜 정보를 얻었는걸요. 이곳 고객들은 제 옷을 보면서 일단 이래요. '어머, 한 번도 못 본 스타일의 옷이네.' 그러고 사가요. 그 덕에 새삼 깨달았죠. 돈 많고 취향 좋은 고객의 눈에 들려면 역시나 그냥 예쁘거나 그냥 잘 만들어선 안 된다는 걸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걸요(웃음)!"

유나 양은 2년 전 도쿄의 명품 백화점 이세탄에도 진출했다. 뉴욕 쇼에서 그가 비즈를 손으로 일일이 박아 넣은 헤어밴드를 몇 개 선보였는데, 그게 일본 바이어 눈에 든 덕이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이세탄의 바이어들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헤어밴드의 재질, 길이, 비즈 개수까지 이메일로 물어가며 제작에 간섭했다.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던 이들은 하나같이 "그냥 관두고 옷이나 더 만들라"고 했다. 유나 양은 그러나 "'내가 이런 작은 프로젝트로도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큰 계약을 따내고 더 큰 시장에 진출하는 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유나 양은 집요하게 헤어밴드에 매달렸다. 벨크로(일명 찍찍이)를 부착해 머리칼은 물론 옷 위나 팔목 같은 부위에도 자유롭게 떼고 붙일 수 있도록 했고, 어디에 어떻게 붙여도 가볍고 아프지 않도록 만들었다. 누가 봐도 갖고 싶도록 우아하고 화려하게 만든 건 기본이다. 이세탄은 결국 유나 양과 정식 계약을 맺고 매장을 내어줬다. "이런 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더 만들어줄 수 있느냐"라고 물으면서.

유나 양이 뉴욕 쇼 무대에서 선보인 헤어밴드.

―한 벌에 2000~3000달러씩 팔리는 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그런 작은 프로젝트에 매달리면 결국 손해를 보게 되는 건 아닌가요.

"아뇨. 전 제 한계를 분명히 알아요. 생각해 보세요. 저는 한국 사람이고, 동양 여자이고, 이름도 유나 양이에요. 알렉산더 왕이나 제이슨 우처럼 미국 이름을 쓰지도 않죠. 처음엔 '이름이 뭐 이리 어려워?'라는 불평 정말 많이 들었어요. 게다가 전 상당히 비싼 고가의 옷과 장신구만 디자인해요. 제 고객은 샤넬·에르메스 정도는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요. 그런데 왜 굳이 유나 양의 제품을 사겠어요? 그냥 잘 만들어선 안 돼요. 아주 신선하고 놀랍고 독특해야만 팔린다고요. 헤어밴드 하나조차 그렇게 남다르게 만들지 못한다면? 저는 빨리 손 털고 디자이너 일 관둬야 하는 거죠(웃음)."

핑계 따윈 필요 없어

유나 양은 소위 허튼 돈을 잘 안 쓰는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광고·마케팅 비용을 거의 쓰지 않고,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공짜로 옷을 주는 일도 하지 않는다. 원단도 남들보다 항상 좋은 조건으로 사는 편이다. "이탈리아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부터 오래 알고 지냈던 거래처가 몇 개씩 있어요. 사정이 어려울 땐 그들에게 솔직히 이메일을 써요. 한국 사람들은 뭐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뜻밖에도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디자인을 설명하고 진심을 보여주면 이해하고 손을 내밀어줍니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미국 뉴욕에서 쇼를 한 번 열 때면 1억~2억원쯤이 우습게 깨진다고들 말을 한다. 몇몇 대기업 패션 회사나 일부 유명 디자이너가 아니면 꾸준히 뉴욕에서 쇼를 열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 유나 양은 한 번도 쇼를 열면서 큰돈을 써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쇼 열 때마다 흔히들 수만달러씩 주면서 장소 빌리고, 홍보 대행사 쓰고, 유명 스타일리스트를 기용해서 쓰지 않습니까.

"많이들 그렇게 하죠(웃음). 그런데 저는 일단 장소 대여를 위해서 돈을 써본 적이 거의 없어요. 내 브랜드와 컬렉션 콘셉트를 쭉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어서 미국 곳곳에 있는 기관과 단체에 뿌려요. 그중 하나라도 나와 철학이 맞는 곳이 있으면 내 쇼를 위해 장소를 아주 싼값에 빌려주거나 심지어 무료로 내줘요. 때론 2~3년씩 계속 쓰라고 하는 곳도 나오죠. 저는 대신 그들을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행사를 치르고요. 홍보 대행사는 써본 적이 없어요. 스타일리스트도 안 썼고요. 그런데 작년 말 제 컬렉션을 보고 어떤 유명 스타일리스트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네 옷이 참 맘에 드는데, 내가 다음 쇼에서 일을 좀 거들어줘도 될까?' 하고요. 깜짝 놀랐죠. 지난 2월 쇼는 그 덕에 그와 작업했어요(웃음)."

―흔히들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성공하려면 인맥이 필요하다고도 말하죠.

"아휴, 저도 그 말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를 좀 보세요.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업계 사람 그 누구도 알지 못했어요. 데뷔하고 나서는 한동안 '파티를 좀 열심히 다녀보라'는 잔소리에 시달렸어요. 파티에 가야 유명 인사들을 만나고 그들과 친해져서 사업을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파티 싫어해요. 몸도 피곤하고 갈 시간도 없죠. 모르는 사람과 말 섞을 시간에 집에서 잠 한 시간 더 자는 게 좋고요. 그래서 안 다녔지만, 뭐 어때요? 열심히 주어진 상황에서 핑계 대지 않고 일하면 그게 결국 인맥이 되고 네트워크가 되던데요."

―디자이너는 그럼 결국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죠.

유나 양은 잠시 생각하더니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사무실 식구가 지금 다섯이고요, 우리랑 같이 일하는 뉴욕 가먼트 디스트릭트에 있는 공방 식구가 50명쯤 돼요. 다른 나라 공방 직원까지 생각하면 더 많죠? 옷을 만들어서 팔고, 그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패션 디자이너라는 게 혼자 폼 잡고 예술 하는 직업만은 아닌 거죠. 패션이라는 그 냉정한 현실 세계에서 끝까지 허우적거리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