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의 연예대상, 30년 넘게 국민 MC 자리를 지킨 진정한 예능대부. 단 한번의 논란이나 스캔들 없었던 예능계의 공자, 예능인들에게 존경 받는 예능 장인"

2016년 1월 무한도전 '예능총회' 편에서 이경규를 소개하며 MC가 한 말이다. 과장의 뉘앙스를 풍기며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내용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이경규는 정말로 30여년 동안 예능인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고 또 그에 상응하는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이경규보다 선배인 예능인은 송해 선생님 정도 계실까. 이경규는 이제 대한민국 예능계에서 거의 최고 어른의 자리에 있다.

58세는 보통의 회사였다면 임원급 직책을 갖고 실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을 만한 나이다. 회사만 튼튼하다면 월급 꼬박꼬박 받고 시간을 보내다, 어느 새 무사히 정년 퇴임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있는 58세의 사람이라면 다소의 권위의식이 있을 수 있고 '꼰대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 58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보다 현재 얻고 있는 이익이 줄어들지 않게 현상유지에 힘을 더 쏟게 마련인 나이다. 물론 안 그런 58세의 사람도 있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조금 더 많이 만났다.

KBS '나를 돌아봐' 중에서

58세의 이경규는 어떤가. 그는 현재 확실히 TOP 레벨은 아니다. 그 자리는 지금 유재석이나 김구라, 신동엽, 굳이 더 보태서 강호동 정도가 차지하고 있다. 이경규는 현재 TOP이 아니어도 될 만큼 이미 충분히 오랫동안 TOP이었던 예능인이다. 그만큼 했으면 지금은 본인의 과거 명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몸 사리며 방송을 해도 나무랄 사람 하나 없다. 그러나 이경규는 아직도 말단 사원처럼 일한다.

'남자의 자격'이 폐지되고 '힐링캠프'는 김제동에게 메인 MC 자리를 내주며, 점점 이경규는 공중파 간판 예능의 메인 자리에서 하나 둘 물러났다. 이경규의 시대가 영광스럽게 저무는가 싶은 그 순간, 그는 오히려 되도록 많고 다양한 예능에 더 많이 출연하고 있다.

MBC, KBS, SBS의 간판 예능을 책임지고 있는 유재석은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제외하면 케이블이나 종합편성 채널의 방송 출연이 전무하다. 현재 몸값이 가장 비싼 만큼 본인의 가치를 관리하려는 차원일 것이다. 사실 불과 최근까지도 공중파 예능을 몇 개 맡고 있느냐는 방송인의 레벨을 나누는 척도 같이 여겨졌기 때문에, 프로그램 숫자는 예능인의 자존심 같은 것이다.

MBC 무한도전 '예능총회'편 중에서

하지만 이경규는 공중파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개의치 않고 케이블·종편 채널을 가리지 않고, MC이냐 게스트냐도 따지지 않고 그 일이 본인에게 매력적인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더 많이 활동하고 있다. 1인자에서 밀려난 자신의 처지를 울적하게 여기기보다 오히려 그 처지에 합당하게 훨씬 더 자유롭게 방송에 나서는 것이다.

["감동이든 힐링이든… 뭐라도 줘야 진짜 웃음"]

이러한 이경규의 행보가 쉬운 선택이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도했다가 실패를 맞기라도 한다면 그 타격은 젊은 날에 비할 바 아닐 것이다. 자칫 그가 평생 쌓아온 명성이 휘청거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경규는 지금 '초심'으로 돌아가기에 분주하다. 'PD 이경규가 간다'를 도맡으면서 악극을 재현한다거나, 과거 '양심냉장고'의 신화를 만들었던 '교양 예능'을 소환했다. 평소 그토록 원했으나 차마 못했던 '눕방'도 과감히 실행했고, 예능초보자들을 데리고 '만물트럭'을 몰아 시골로 가기도 했다. 그리고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발에 참여하며 '이경규쇼'라는 타이틀의 연극을 시도했고 현재는 아무 집이나 초인종을 누르며 저녁식사 한끼를 거의 '구걸'하다시피 하는 낯뜨거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중에서

이경규의 이러한 전방위적 활동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그의 '꼰대' 이미지 때문이다. 그의 행동에는 58세의 보통 남자가 흔히 갖기 쉬운 권위의식이 가득하다. 녹화시간이 너무 길다며 제작진들을 향해 직접 호통을 치기도 하고 후배 MC들을 현장에서 윽박지르기도 한다. 소위 '이경규 라인'이라 불리는 후배 무리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얼마나 대접받고 있는가를 강조하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의 능력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경규의 '꼰대'스러운 행동은 사실 모두 농담이다. 그저 웃음의 소재가 될 뿐이다. 그것이 진심이 아니며 이경규의 본 모습이 아님을 모두가 이미 알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사실 '꼰대'와는 그 누구보다 멀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꼰대스러움'은 최근 몇 년 동안 하고 있는 이경규의 새로운 도전을 돋보이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경규의 호통과 불평과 잘난척에 사람들은 깔깔 웃을 뿐이다.

MBC '라디오스타' 중에서

'호통개그'의 창시자, 이경규의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글의 법칙'에 출연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어떤 그림이 펼쳐질 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러나 왠지 엄청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무한도전 '예능총회'편에서 김구라가 이런 말을 했다.

"역시 웃기는 데는 이경규씨가 최고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경규씨가 패널로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현장을 폭소하게 만든 이 발언은 마냥 우스개 소리만은 아니었다. 이 말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후 이경규의 예능 활동은 '패널' 활동을 포함해 더욱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경규가 도전할 영역은 점점 더 광범위 해졌고, 마침내 '정글의 법칙'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일을 벌일 것인지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MBC 무한도전 '예능총회' 편에서

[이경규 "정글? 처음엔 농담인 줄… 늙지 않으려 도전"]

"사실 제가 복면가왕 보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복면가왕 MC가 못될바엔 패널로 앉아있으면 될텐데… 이제 패널 하겠다는 거예요. 한 스무 개 하겠다는 거예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끝을 내자 이거예요. 이제 가릴 게 뭐가 있냐 이거야"

이경규는 이렇게 얘기하며 또 사람들을 웃겼다. 그러나 이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고 '꼰대' 이경규의 젊고 신선한 도전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응원하게 한다.

[개그맨 이경규는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