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특파원

"같이 일하는 동료 중 스웨덴 사람은 절반도 안 돼요. 나머지는 저처럼 난민 출신이거나 이민자예요."

아프리카 수단 난민 카노(Kano·28)씨는 2년 3개월 전 내전(內戰)을 피해 스웨덴 말뫼에 왔다. 지금은 30㎡(약 9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모로코 출신 친구와 살고 있다. 오전엔 스웨덴어와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고 오후에는 수퍼마켓에서 계산원으로 일한다. 말뫼 이민자교육센터에서 만난 카노씨는 "3개월 전 난민 지위에서 벗어나 정식 이민 허가를 받았다"며 "자동차 정비소에 정식으로 취직해 스웨덴 시민으로 정착하고 싶다"고 했다.

'말뫼의 눈물'로 익숙한 스웨덴 남단 항구도시 말뫼는 2000년대 초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 크레인을 해체해 한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곳이다. 이곳이 지금은 '이민자들의 도시'가 됐다. 1990년대 이라크·유고슬라비아 등에서 난민 2만여 명이 들어와 정착했고, 최근 몇 년 새 시리아·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온 난민이 6000명에 달한다. 말뫼 인구 32만명 중 14만명(43%)이 난민·이주민이거나 그 자녀들이다.

젊은 이민자들 덕분에 가라앉았던 도시 경제는 되살아나고 있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호텔, 레스토랑 등 서비스 업종뿐 아니라 청정에너지 산업과 IT 기업 등에도 젊은 이민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말뫼 시 관계자는 "비교적 어릴 때 건너온 이민자들은 대학 교육까지 받고 IT 회사에 취업하거나 직접 창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스웨덴 말뫼시의 이민자 교육센터에서 한 청년 이민자가 기술 교육을 받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히잡을 쓴 이민자 여성이 함께 일하는 스웨덴 동료와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북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적극 받아들여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로 삼고 있다.

북유럽은 스웨덴을 제외하고는 최근까지도 이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다. 가난한 이민자는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였다. 세금을 내지 않는 난민들에게 똑같은 수준의 주거나 의료 혜택을 제공하다 보면, 다른 시민들이 받는 복지 혜택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난민을 젊은 노동력으로 활용하면, 난민 인권 보호와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됐다. 현재 북유럽 4개국 모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노인 인구 비율이 2005년 15.9%에서 2015년 20.5%로 증가하는 등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민에 적극적인 스웨덴은 지난해에만 난민 11만명을 받아들였다. 2012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거주 허가를 받은 난민은 31만여 명에 이른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핀란드도 난민들에게 문을 열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거주 승인을 받은 난민은 2006년 3200명에서 2016년 1만4669명으로 크게 늘었고, 핀란드도 같은 기간 618명에서 7745명으로 급증했다. 헬싱키 곳곳에서는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이 유모차를 밀면서 산책하거나 중동계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핀란드 정부는 이 난민들에게 거주·의료 혜택뿐 아니라 핀란드어 교육과 직업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핀란드 탐페레대학의 안나 아르포넨 연구원은 "난민·이민자들에게 교육과 직업 훈련,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핀란드를 위한 투자"라고 밝혔다.

난민 수가 늘면서 대도시 포화와 테러 우려 같은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난민들은 대개 스톡홀름, 예테보리 같은 대도시에 거주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집값 비싼 도시에 난민이 몰려들면서 주택난이 심화되고 있다. 중동 난민과 동유럽 이주민이 대거 몰린 말뫼는 도시 남동쪽에 출신 지역별 폭력 조직이 대거 생겨나 치안이 불안한 상황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반(反)난민 정서가 확산되면서 시위 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요크 리베로 말뫼 이민자교육센터장은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아프리카 출신 저학력 난민들은 직업훈련까지 최소 5~8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일자리를 구해 자기 몫의 세금을 내게 될 때까지 스웨덴 시민들이 인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