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전국적으로 진행된 쥐잡기 운동 홍보 포스터.

"한 쌍의 쥐가 1년 후면 1250마리로 늘어나게 되는데, 이 엄청난 쥐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남성의 내레이션이 끝나자 등 전체에 발진이 퍼진 남성이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어진 화면에선 쥐 떼가 병아리를 잡아먹고 곡식 포대를 물어뜯는다. 1970년 농림부의 '쥐 잡기 홍보 영상'이다. 그해 농림부는 국내 쥐가 9000만 마리라고 추산했다. 당시 총인구(3220만명)의 약 3배였다. 정부는 '쥐와의 전쟁'을 벌이고 전 국민이 한날한시에 쥐약 놓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72년 쥐잡기 운동으로 4728만6027마리를 잡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쥐 꼬리를 제출받아 집계한 자료인데, 당시 학교나 관공서에 쥐 꼬리를 가져가면 꼬리 하나당 연필 한 자루나 복권 한 장을 주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쥐와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도시화와 개인 위생의식 발달로 쥐 보기 힘든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만 해도 극장 좌석 사이로 쥐가 다니고, 하수구 근처에서 쥐를 보기 어렵지 않았다. 어느샌가 쥐가 사라진 것이다.

정부에선 현재 국내 쥐 개체 수를 추산하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의 방제 사업에 나설 만큼 쥐 피해가 심각하지 않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중앙정부에서 담당하던 쥐 관련 방역 작업은 2000년대 초 각 지자체로 넘어갔다. 서울시청 생활보건과 김규대 감염병관리팀장은 "시민들로부터 쥐 민원이 들어오면 일선 보건소에서 퇴치와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며 "민원 건수를 기록하지 않을 만큼 드물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 전한영 과장은 "쌀 산업정책의 역사를 정리한 '한국양정사'를 보면, 농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의 들쥐 방제 기록은 1983년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는 "곡식 자급자족이 이뤄지면서 쥐 방제 필요성이 낮아진 게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쥐 감소 요인으로 도시화로 인한 주거환경 개선을 꼽았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아파트 같은 콘크리트 건물이 많아졌고 이 때문에 과거 흙집에 구멍을 뚫어 집 안으로 들어오던 쥐들이 은신처를 잃게 됐다"고 말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한상훈 연구관은 "도로가 정비되고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집쥐들이 지상으로 다닐 수밖에 없게 됐다"며 "그 과정에서 차에 치여 죽거나 늘어난 고양이들에게 포식당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음식물 분리수거함이 정비되면서 쥐들이 먹이를 찾기 힘들어진 점도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각종 시설의 주기적인 방제나 소독이 쥐 개체 수를 줄였다는 분석도 있다. 1984년 만들어진 법에 따라 재래시장이나 병원, 300세대 이상 대형 아파트는 소독의무 대상으로 지정돼, 월별 혹은 분기별로 소독 등 방제·방역 조치를 해야 한다.

바이러스나 전염병 매개체로 쥐를 경계할 필요성도 낮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 조은희 과장은 "쥐를 포함한 설치류가 유행성 출혈열이나 쓰쓰가무시병 등을 전파할 수 있지만 위험성이 높지 않아 미리 방역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환경부 한상훈 연구관은 "쥐 개체 수가 준 건 사실이지만 과거보다 눈에 잘 띄지 않게 된 건 서식지가 지상에서 지하 하수구나 배관 쪽으로 바뀌게 된 탓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방역전문업체 세스코 관계자는 "전국 고객사 건물에 설치된 적외선 CC(폐쇄회로)TV로 관찰된 쥐는 작년 23만4800여 마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