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은 임신부에겐 고통이지만 태아에게는 보호막이라고 한다. 임신하면 엄마 몸의 모든 기능은 배 속 아이를 건강하게 지키는 쪽으로 재편성된다. 행여 아이에게 안 좋은 게 들어갈까 봐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입덧이다. 그런가 하면 임신 중반 이후엔 순대같이 평소 잘 못 먹던 것을 마구 먹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역시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보충하라는 신(神)의 뜻이다. 임신한 엄마들에게 먹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한 언론계 선배는 임신 때 친정어머니가 삶은 밤을 참기름에 비벼 먹으면 좋다며 보내온 일을 얘기했다. 옛날부터 임신부들이 잉어 즙이나 용봉탕 같은 걸 먹으면 좋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대, 모든 임신부가 순조로운 출산 환경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쟁이 일어나면 엄마들은 극도의 배고픔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배 속 아이에게 그대로 악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 6·25전쟁 때가 그랬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철희 교수가 6·25 때 전선(戰線)이 남북으로 격심하게 움직이던 시기 엄마 배 속에 있었던 1951년생들을 조사했더니 다른 세대보다 노년기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보기·듣기·말하기·걷기·계단 오르기 등 여러 분야에서 다른 세대보다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치열했던 한반도 중부지방 출신이 더 했다.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쟁 일상 그리고 희망' 사진 전시회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젊은 엄마가 어린아이 둘을 태운 달구지를 끌고 어디론가 피란 가고 있다. 이런 엄마들 배 속에 있던 아이가 1951년생일 것이다. 1949년 1인당 75달러로 세계 최하위였던 우리 국민소득은 전쟁이 나자 그나마 60달러로 떨어졌다. 살아남는 게 발등의 불인 상황에서 임신 보양식은 사치였다. 길에서 주운 시래기 하나도 구원이었을 것이다.

▶'웨딩 플래너'와 함께 '베이비 플래너'가 성업하는 시대다. 태아 두뇌, 심장 근육 수축, 면역 체계 발달에 좋은 식품이 쏟아져 나온다. 배 속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하는 '베이비 문'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1951년생은 전쟁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엄마의 고통과 부실한 영양 상태를 통해 험난한 세상을 배 속에서부터 겪고 태어났다. 이런 악조건을 딛고 우리의 오늘을 만드는 데 인생을 바쳐온 세대가 노년 문턱에서 태생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프다. 1951년생 파이팅! 그들을 낳아 기른 모든 어머니께도 머리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