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 소설가

신록이 번져가는 요즘 들어 카카오톡의 절친들 단톡방에서는 병 자랑이 늘어간다. 서로 질세라 여기저기 아프다고 엄살을 떨어댄다. 그러면서 위안을 얻는 갱년기 여자들의 묘한 심리는 또 뭔지. 저만치 다가온 노년의 문이 두려운 거다. 그래 아프니까 노인이지. 그래도 아픈 친구들과 함께 저 문을 통과할 테니 덜 외롭겠지. 그런데 50대 싱글인 작가 친구의 푸념이 자꾸 생각난다. "남편과 자식 있는 것들은 좀 낫지. 난 곧 궁핍한 독거노인이 될 걸 생각하면 끔찍해."

요즘 TV 대선 토론 프로가 뜨겁다. 청년 일자리 공약은 중요한 논쟁점인데, 상대적으로 노인복지 공약은 빈약한 듯하다. 고령인구가 늘고 심심찮게 독거노인의 자살이나 고독사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노인에겐 돈이 없다. 가난하고 궁상스러운 노인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길거리에서 폐지 수레를 끄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스웨덴의 소설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는 세계와 고립되고 고독한 노인의 품위와 존엄성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고집불통에 까칠하기 그지없는 59세의 이 남자는 시계처럼 정확하고 기계처럼 우직해서 40년 동안 한집에서 살고, 똑같은 일과를 보냈다. 그는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일했지만 '구세대'가 되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어느 화요일 오전,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결심한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를 천장에 박아 그 고리에 밧줄을 걸고 자살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가 막 천장에 고리를 박으려는 순간, 실패한다. 건너편 집에 지상 최대의 얼간이 가족이 이사를 오고 성가신 일들이 일어난다. 그 후로도 그의 자살 시도는 눈치 없고 푼수인 이웃들이 기막힌 타이밍에 끼어들어 방해를 받게 된다. 왜 그는 끈질기게 죽으려 할까. 생애 단 하나의 의미이고 사랑이었던 아내 소냐가 반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냐는 그에게 '흑백으로 보이는 세상에 그녀만이 유일한 색깔이었다.' 그러니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소냐는 오베와 달리 사람과 인생을 사랑하고 책과 고양이를 좋아하고 따스하고 감성적이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소냐는 오베라는 남자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랑했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를 꼭 잡았다.'

소냐가 죽자 살아도 산 게 아닌 오베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세상과 단절하고 더욱 까칠해졌다. 그러나 교류하고 싶지 않았던 이웃이나 사람들과 자꾸 이상한 사건에 엮이면서, 오베는 아내를 추억하며 '만약에 소냐라면'이라는 가정을 하며 사람들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다. 소냐가 좋아했을 일을 하다 보니 이웃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오베는 서서히 고독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 이후로도 작가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77세), '나, 브릿마리 여기 있다'(63세) 등의 소설을 연달아 펴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또 다른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100세),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79세)도 모두 스웨덴 소설이다. 기발하고 개성적인 캐릭터의 스웨덴 노인이 주인공인 베스트셀러다. 국민의 20%가 노인인, 노인복지제도가 잘 된 '노인을 위한 나라', 스웨덴의 다양하고 멋진 '노인소설'이 부러운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