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3시 충북 옥천 군서초등학교 체육관에선 신명이 났다. "갱 개개갱 갱 개개갱" 꽹과리가 흥을 돋우자 "덩 궁따궁 덩 궁따궁" 장구채가 좌우로 춤췄다. "둥둥둥둥" "지잉지잉" 북과 징이 가락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초등학생 50여 명도 어깨가 들썩거렸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이석현(24·꽹과리) 조형곤(26·징) 박준호(27·장구) 고태욱(25·북)으로 구성된 사물놀이패 '땀띠'다.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나는 예술여행' 공연팀 중 하나로 선정돼 4월부터 전국 도서산간 지역 학교를 돌며 국악 콘서트를 열고 있다. 공연 시작 직전, 석현씨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자 산만하던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땀띠 멤버 전원은 이런저런 장애를 가지고 있다. 석현씨는 근육이 강직돼 하반신을 제대로 못 쓰고 오른손이 잘 펴지지 않는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 형곤씨는 지적장애자로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고, 준호씨와 태욱씨는 영화 '말아톤' 주인공처럼 자폐성 장애인이다.

사물놀이패 땀띠는 장애인 4명으로 구성됐다. 어머니 4명은 공연을 따라다니며 무대와 조명을 챙긴다.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아들과 함께 떠나는 멋진 소풍인걸요.” 왼쪽부터 조형곤씨와 어머니 송향숙씨, 이석현씨 어머니 최두희씨와 이씨, 송경근 땀띠 감독, 박준호씨와 어머니 조상구씨, 고태욱씨 어머니 문미영씨와 고씨.

공연 이틀 전인 8일 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교회 지하 1층 영아 예배실. 땀띠 연습이 한창이었다. 석현씨를 제외하곤 문답이 쉽지 않았다. '연주할 때 좋아요?' 물으면 "리코더 연주!"(준호씨), "좋은 데를 만나고 왔습니다"(형곤씨)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형곤씨 어머니 송향숙(58)씨가 웃으며 '통역'해줬다. "리코더 연주할 때 신나고, 좋은 사람들과 협연하는 게 좋다는 뜻이에요."

이 사물놀이패는 14년 전인 2003년 결성됐다. 당시 초등학교 4~6학년이던 이들 4명은 서울 서대문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 음악치료를 받다가 뭉치게 됐다. 당시 이들에게 처음 국악을 가르친 김수진(44) 음악치료사는 "서로 다른 아이들끼리 함께 연주하는 게 가능할까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태욱이, 준호처럼 자폐성 장애인들은 집중력이 좋아서 악기 실력은 금방 늘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아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게 힘들어요. 형곤이 같은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박자 감각이 많이 부족해 악기 배울 때 다른 친구들보다 2~3배 더 노력해야 하죠. 석현이는 몸이 불편해서 꽹과리 잡는 것도 힘들었고요.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됐어요. 서로 딴 데 쳐다보고 얘기도 안 하고요."

이 사물놀이패 이름에는 고생한 기억이 담겨 있다. 연습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서울 은평구에 작은 연습실을 빌렸는데 에어컨이 고장 나 작동을 안 했다. 한여름에 꽹과리, 징, 장구, 북을 한두 시간 두드렸으니 옷이 땀으로 젖었다. 아이들 온몸에 땀띠가 솟았다. 석현씨는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이름을 '땀띠'로 붙였다"고 했다.

태욱씨 어머니 문미영(54)씨는 "지원도 없고 연습장 구하기 힘들어서 몇 번 그만두게 할까 생각했지만 연주에 폭 빠져 사는 아이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을 때도 손으로 무릎 치면서 덩더 궁따궁 박자 맞추고(조형곤), 한여름에 문 닫고 이불 뒤집어쓰고 꽹과리 치고(이석현), 북채 잡은 손 굳은살이 벗겨져 피가 나도 치고(고태욱), 구두 소리 나면 "장구소리 난다"고 하는(박준호) 아이들이었다.

상모돌리기 공연을 하는 조형곤씨.

땀띠는 방학이 되면 소풍을 떠났다. 산, 들, 바다와 함께 네 악기가 흩어졌다 어울렸다, 한데 놀았다. 말은 여전히 안 통했지만 연주는 통하기 시작했다. 땀띠는 2004년 한 복지관에서 주최한 장애인풍물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더니 2007년 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 참가하는 공주 세계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 학생부에서 2등에 해당하는 버금상을 수상했다. 2012년 11~12월 일본 도쿄예술대학이 주최한 '게다이아트스페셜'에 초청받아 일본의 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2013년 1월 강원도 평창 스페셜 올림픽 오프닝 무대에도 올랐다. 현재 땀띠 연습을 돕고 있는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송경근(43) 감독은 "땀띠 멤버들은 사물놀이 악기 외에도 태평소, 리코더, 실로폰, 기타 등 각자 서너 가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며 "모두 엄청난 노력파"라고 했다.

땀띠 4명은 연주로 무대 밖 인생도 바뀌었다. 석현씨는 고등학교 전교 회장에 출마해 당선됐었고, 현재는 서울대 국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난 3월부터는 KBS 장애인 앵커로 활동하고 있다. 태욱씨(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졸업)와 형곤씨(백석예술대학 국악과 졸업)는 전문 공연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고, 준호씨는 호산나대를 나와서 서울 모 여대 행정실에서 일하고 있다. 준호씨 어머니 조상구(51)씨는 "준호는 예전에는 '예, 아니요'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다"며 "땀띠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다"고 했다.

땀띠 공연 사이사이에는 4명이 겪고 있는 장애에 대해 소개하는 만화영화가 상영된다. 2015년부터 한화그룹의 '찾아가는 예술교실'을 통해서도 전국 초·중·고교와 복지기관에서 장애인 이해를 돕는 공연을 하고 있다. 석현씨 어머니 최두희(50)씨는 초등학생들이 보내왔다는 소감문을 보여줬다. 최씨는 "땀띠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고 해요. '장애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걸 느꼈다'는 친구도 있고요."

옥천 군서초등학교 공연 분위기가 무르익자 형곤씨가 기다란 흰 종이가 달린 상모를 쓰고 나와 열두 발 상모돌리기를 했다. 종이가 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자 박수가 터졌다. 형곤씨가 활짝 웃었다. 송경근 감독은 "태욱씨와 준호씨는 연주하며 무표정할 때가 많은데 형곤씨 미소로 분위기가 방방 뜬다"며 "4명 모두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환상의 사물놀이 드림팀"이라고 했다.

이날 마지막 연주를 앞두고 석현씨가 "공연하다가 꽹과리에 금이 갔는데 소리가 이상하지 않았나요?" 물었다. 아이들이 크게 외쳤다. "아니요. 신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