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요즘 서울대병원은 내부적으로 '우리의 역할은 끝났는가'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눈에 띄는 학문적 성과도 사라졌고, 이런저런 외풍에 시달리며 방향을 잃은 듯한 위기감이 크다.

그간 서울대병원은 국가 중앙병원으로서 선진 의학 확산과 전문 의료 인력 양성이라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1963년 국내 최초로 인공심폐기를 이용한 개심술을 성공한 이후 한국 의료 역사상 최초라는 혁신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엔 세계에 내세울 만한 획기적인 성과를 냈다는 소식이 끊겼다. 진료는 중증 고난도의 질병보다는 수익성이 높거나 박리다매의 경증 환자에 치중하고, 연구는 안전하고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SCI(과학기술 논문 인용 색인) 논문 위주로 수행하면서 신산업으로 성장하거나 의료를 변화시킬 획기적 시도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민간 병원과 경쟁하면서 존재감은 사라지고 구성원의 자존감도 떨어지고 있다. 저수가의 건강보험 체계, 정부의 재정 자립 요구 및 예산 지원 축소라는 현실에서 기업형 경영 방식 도입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런데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최근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 병원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공공 의료를 강화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소관 부처의 이관 문제가 아니다. 공공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산하의 국립대 병원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 지방의료원들의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권역별 대학병원들이 농어촌, 도서·산간 등의 응급 환자와 분만을 책임져주고, 지역 거점 공공 병원에 전문의를 파견해 1차 의료 취약지의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지역별 양질의 의료 인력을 교육·훈련하는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정부의 정책 협력 병원으로서 초고령화와 저출산 문제 등 국가적인 재난의 해결 방안을 만들고, 의료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적정 진료를 확산시키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대병원만의 힘으론 불가능하다. 공공 병원들과 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