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6일(현지 시각) 추진했던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한 규탄 성명 채택이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 내에서는 대북 압박에 비협조적인 러시아와 중국을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이날 북한의 ICBM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미국이 작성한 성명 초안을 이사국들에 회람시켰으나 러시아의 이의 제기로 채택에 실패했다고 AP통신 등이 7일 보도했다. 러시아는 성명 초안에 나오는 "북한의 ICBM 발사를 강력 규탄한다"는 내용을 문제 삼으며 삭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북한이 지난 4일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판단된다"는 논평을 냈고,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도 이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머나먼 미국과 러시아 - 5일(현지 시각)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블라디미르 샤프론코프(위 오른쪽)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 대사가 니키 헤일리(아래 왼쪽)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등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주요 도발 때마다 언론 성명을 우선 채택하고 제재 결의안을 추진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성명 무산은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ICBM으로 규정되면 그만큼 제재 수위도 높아지는 만큼 러시아가 규탄 성명 단계에서부터 차단막을 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는 미국 본토가 북한 ICBM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북 제재의 수위를 낮추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안보리 회의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미국 정부는 물론 북한까지도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ICBM이라고 확인했는데 러시아만 아니라고 한다"며 "러시아가 원한다면 그 미사일이 ICBM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정보를 기꺼이 제공하겠다"고 했다. 반면 러시아는 이날 유엔 주재 러시아대표부 홈페이지에 공개한 성명에서 "러시아는 언론 성명 초안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한 것일 뿐 반대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새 대북 제재결의안에 대북 석유 수출 금지 확대, 북한 노동자 해외 파견 금지 등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조항을 담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러시아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원유 수출 금지 등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기반을 흔들어야 한다는 판단인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이로 인해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은 이날 CNN에 출연해 "북한의 가장 강력한 동맹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경제에 땔감을 제공해 독재자 김정은에게 미국에 저항하는 데 필요한 '총과 버터'를 공급하고 있다"며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국가들을 응징하는 것, 즉 '북한과 거래한다면 우리와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AOL닷컴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을 높이도록 중국을 설득해야 하고, 이것이 (대북 제재의) 유일한 카드"라고 했다. 실제 미 재무부는 지난달 초 북한 핵프로그램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기업과 개인 3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미 법무부가 지난 5월 시티은행 등 8개 대형 은행을 통해 거래된 북한 자산을 압류하려 했었다"고 보도했다. 이 자산은 북한 석탄의 최대 수입자인 '단둥 즈청 금속' 등의 명의로 거래된 것으로, 사실상 북한 자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함께 한·미 군사훈련을 동결하자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과 한국의 군사훈련 사이에는 아무런 등가성이 없다"며 "미국은 전 세계와 이런 훈련을 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더라도 이 같은 입장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아직 대북 압박은 초기 단계로, 중국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한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이날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ICBM 발사 성공 자체가 우리를 전쟁으로 더 가깝게 가게 했다고 믿지 않는다"며 "그간 대통령과 국무장관도 매우 분명하게 말했지만 우리는 경제·외교적인 노력으로 북한을 다루고 있다"고 했다. 이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헤일리 유엔 주재 대사가 잇따라 군사행동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전쟁 우려가 커지자 이를 완화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