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안은 3대째 직업이 '영화감독'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78)는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을 연출한 미국의 명감독. 그의 딸인 소피아 코폴라(46) 역시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감독이자 배우다. 손녀인 지아 코폴라(30)도 2013년 데뷔한 영화감독. 이번에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아내인 엘레노어 코폴라(81)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3일 국내 개봉한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엘레노어가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 극 영화다. 그동안 엘레노어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설치 미술가, 논픽션 작가로 활동했지만 장편 극 영화는 나이 여든에야 처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코폴라 집안의 안주인'도 제작비 투자 유치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엘레노어는 2일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를 위해 투자를 유치하고 배우를 캐스팅하느라 6년이나 걸렸다"고 답했다. 그는 "너무나 힘들었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액션이나 총격전, 격투신, 외계인도 없고, 아무도 죽지 않으며, 심지어 차량 충돌 사고나 스파이, 추격전, 게다가 섹스신과 폭력적 장면도 없었으니까"라고 말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운데)와 엘레노어 코폴라(오른쪽) 부부. 왼쪽은 딸 소피아.

'파리로 가는 길'은 영화 제작자(알렉 볼드윈)와 함께 프랑스 칸에 머물던 아내(다이앤 레인)가 남편이 출장 간 사이에 프랑스 남자와 파리 여행을 떠난다는 '로드 무비' 형식이다. 코폴라 부부의 실제 경험에서 착안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로맨스에 대해 엘레노어는 "픽션으로 이것저것 더해서 만든 이야기"라고만 귀띔했다.

엘레노어의 '지각 데뷔'에 실은 남편과 딸도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고 한다. 엘레노어는 "남편은 내가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내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영화 연출하는 걸 그다지 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소피아)도 자신의 일이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알렉 볼드윈과 다이앤 레인 같은 주연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던 건 남편 덕분이었다고 했다. "레인은 '커튼 클럽'과 '아웃사이더' 등 남편의 영화에 여러 번 출연했죠. 스타 의식도 적은 편이어서 겁먹지 않고 제가 출연을 제안했어요. 볼드윈도 남편에게 '자선 모금 파티에 사회를 봐달라'는 부탁 전화를 걸었는데, 남편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아내 영화에 출연 좀 해줄래요?'라고 부탁했어요."

영화 촬영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우리 영화의 예산(약 500만달러)으로는 딱 28일밖에 촬영을 진행할 수 없었어요. 프랑스 전역을 모든 스태프가 돌아다니면서 촬영하느라 예산이나 시간상 제약이 적지 않았죠."

엘레노어는 '파리로 가는 길'을 마친 뒤에도 단편 영화 2편을 촬영했다. 그는 "단편 소설처럼 20여 분의 짧은 영화들이라서 투자받기 위해 6년씩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덧붙였다. "누가 알겠어요? 또 장편 영화를 찍게 될지. 삶이든 영화든 대비할 수 없는 일은 언제나 일어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