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 패션, 펑크의 저항 패션에서 쿨한 럭셔리로 진화
알렉산더 맥퀸의 스컬 스카프, 해골 패션의 대중화 이끌어
예술 작품에서 해골은 죽음과 허무함 상징… 패션에서 해골은 조형미에 중점

알렉산더 맥퀸(왼쪽)과 해골 스카프, 맥퀸은 줄곧 해골과 죽음의 이미지를 디자인 모티브로 사용했다. 그는 2010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해골(Skull)하면 어떤 기분이 떠오르는가? 대부분은 죽음, 공포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패션 매장에 진열된 해골 제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마도 무섭다는 감정보다는 ‘멋지다’, ‘쿨하다’라는 말이 더 먼저 나올 것이다.

사람이 죽고 난 후 썩고 남은 머리뼈, 죽음을 시각화한 음산하고 섬뜩한 분위기. 해골은 주로 무섭고 음울한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알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해골로 자신을 치장하는 걸 즐긴다. 타투를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해골을 새기고, 럭셔리 브랜드들도 해골을 단골 소재로 활용한다. 무시무시한 해골은 어떻게 스타일 아이콘이 된 걸까?

◆ 알렉산더 맥퀸의 스컬 스카프 ‘해골 패션’의 대중화 이끌어

해골은 1970년대 펑크 록의 유행과 함께 뮤지션들이 애용하던 소재였다. 당시 음악 좀 한다는 청년들은 머리를 요란하게 기르고 해골 문양 티셔츠와 금속 액세서리로 반항심을 표현했다. 해골 패션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패션’으로 정의되며 아웃사이더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일부 마니아들만 즐기던 해골 패션을 주류로 이끈 것은 영국의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다. 그는 줄곧 해골과 뼈, 죽음의 이미지를 디자인 모티브로 사용했다. 그의 손을 거쳐 해골은 화려하고 도발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재탄생했다.

해골은 트렌드를 막론하고 패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필립플레인 2017 F/W, 꼼데가르송 2011 S/S, 알렉산더맥퀸 2008 S/S(왼쪽부터)

2006년 맥퀸이 선보인 해골 문양 스카프는 해골 패션의 대중화를 이끈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케이트 모스, 패리스 힐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착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해골 열풍’이 일었고, 급기야 뉴욕타임스는 ‘죽은 자의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해골 패션을 조명했다. 이런 흐름은 국내에도 이어졌는데, 2010년에는 배우 김희선이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빈소에 맥퀸의 해골 문양 스카프를 두르고 등장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방시, 꼼데가르송, 크롬하츠 등도 해골 패션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독일 패션 브랜드 필립플레인은 아예 해골을 브랜드 심벌로 내세웠다. 이 브랜드는 의류와 가방, 신발, 주얼리 등 대부분 제품에 해골 문양을 사용한다. 심지어 매장 입구에는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박힌 거대한 해골 조형물을 진열해 놨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메고 나왔던 해골 문양 토트백도 이 브랜드의 제품이다.

◆ 해골, 죽음의 아이콘에서 스타일 아이콘으로 진화

예술가들에게도 해골은 창의적인 영감을 준다. 해골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데미안 허스트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2007)’를 들 수 있다. 실제 사람의 해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빽빽이 박은 이 작품은 무려 9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허스트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축하하는 작업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데미안 허스트의 ‘사랑을 위하여’는 실제 해골에 8601개의 다이어몬드를 박았다. 사용된 다이아몬드만 1106.18캐럿, 우리 돈으로 20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많은 예술 작품에서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활용됐다. 중세 말에는 건축물의 벽화나 책의 삽화로 해골들이 춤추는 그림을 장식하는 게 유행했다. ‘죽음의 춤(danse macabre)'이라 불린 이 그림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중세 유럽인들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투영했다. 중세인들은 이를 통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크 시대에는 해골이 들어간 정물화가 융성했다. 이를 ‘바니타스(Vanitas)’라 불렀는데,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허무함, 덧없음을 뜻한다. 30여 년 간 종교전쟁을 치른 당시 사람들은 죽음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덧없음과 허무함을 해골로 표현했다.

해골이 대중에게 각인된 계기는 해적들이 사용하면서다. 18세기 초 해적들이 검은색 바탕에 흰색 해골을 중심으로 하단에 대퇴골 2개를 겹친 그림을 해적기로 사용하면서, 해골은 두려움과 공포의 의미를 더하게 됐다.

피터 클라스 ‘바니타스 정물화’,1630

20세기 들어 해골은 문화 현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1970년대 영국의 젊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등장한 펑크족은 기성세대에 저항하고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의미로 해골을 사용했다. 금기와 죽음의 공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자신들의 공격적인 성향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해골이 단순한 기호가 아닌, 하나의 패션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해골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스타일 아이콘으로 주목받게 된다.

◆ 해골 패션, 마니아의 전유물에서 쿨한 럭셔리로… 그 자체의 조형미에 매력

오늘날 해골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다양한 이미지로 활용된다.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에서 해골은 산타클로스를 납치해 크리스마스의 주인이 되려는 악동으로 그려졌고,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에서 해골은 신비한 힘을 가진 성물로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출연진이 엉뚱한 얘기를 하면 우스꽝스러운 해골 말풍선이 붙는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해골(왼쪽)과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 속 해골 캐릭터

2006년 뉴욕타임스도 이런 분위기를 짚었다. “사람들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보고도 더는 무섭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랫동안 록 그룹이 해골을 상징물로 써온 데다 해골이 나오는 잔인한 내용의 할리우드 영화가 쏟아져 나온 것도 해골을 친근하게 받아들인 요인이다.”

그렇다면 패션에서 해골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펑크와 함께 시작된 해골 패션은 초창기엔 저항의식의 상징으로 활용됐지만, 현재는 피상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짙다.

‘지식인의 옷장’의 저자 임성민은 해골 패션이 예술 작품에서처럼 심오한 의미를 창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패션에서 해골은 스카프나 팔찌 같은 액세서리나 옷의 패턴으로 사용되지만, 이미지를 활용하는 데 집중할 뿐 모티브 자체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중에 어필하는 주류 패션은 절대 무거운 의미를 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3년 출시된 데미안 허스트와 알렉산더 맥퀸의 콜라보레이션 스카프, 산자와 죽은자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패션에서 해골은 의미보다는 그 자체가 가진 조형미와 반항적 이미지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해골은 완벽한 대칭형 구조에 흑백의 대비로 조형적인 매력이 충분하다.

해골 패션은 펑크에 뿌리를 둔 만큼, 음악과 연관성이 깊다. 히피, 록, 펑크, 고스, 힙합에 이르기까지 해골은 다양한 음악을 넘나들며 환영받고 있다. 아이돌 그룹 빅뱅과 2ne1도 해골 문양을 즐겨 사용하는데, 빅뱅은 직접 해골을 소재로 한 휴대폰 케이스와 야구점퍼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해골은 대중음악과 함께 자유분방하고 젊은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최근 해골은 음울한 이미지보다는 그래픽적이고 유희적인 이미지로 변모하고 있다. 코치2017 S/S, ‘구찌 고스트’ 티셔츠(왼쪽부터)

최근 스트리트 문화가 부상하고 주류와 비주류 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해골의 쓰임새는 더 다양해지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구찌는 2016년 길거리 아티스트 트러블 앤드류와 함께한 '구찌 고스트(GucciGhost)' 컬렉션에서 해골을 유희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켰다. 눈 부분이 구찌의 'G'로고 모양으로 변형된 이 해골은 공포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돼 구찌 마니아들에게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