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적인 '갈등 사회'다. 작년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을 대상으로 '사회갈등지수'를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의 잠재 갈등 지수는 1.88로 멕시코(3.92), 터키(2.46)에 이어 3위였다.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연간 최대 246조원으로 추산된다는 분석(삼성경제연구소)도 있었다. 더욱 심각한 건 한국의 사회갈등 지수는 점점 상승 추세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사회 갈등을 줄이는 방법으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제시한다. 특히 가치관이 형성되는 10대 청소년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은 더욱 중요하다고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함께 선진 민주주의 교육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 호주·뉴질랜드의 청소년 교육 현장을 찾았다. 두 국가 모두 사회적 갈등이 적다는 공통점이 있다.

뉴질랜드의 교사들은 '회색의 존재'다. 좌(左)든 우(右)든 정치·사회적 이슈를 특정 이념으로 교육하는 걸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과 과정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동료 교사, 학부모 등과 토론을 거치는데, 뉴질랜드 정부 관계자는 이를 '교과 과정의 회색지대(gray area in curriculum)'라고 했다. 학생들이 특정 정치 이념에 물들지 않도록 중립적 민주 시민 교육을 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뉴질랜드는 자율적·창의적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사실상 폐지했다. 이 때문에 교사의 재량권은 더욱 커졌고, 거기에 맞춰 교사의 중립성 의무도 함께 커졌다.

지난달 17일 뉴질랜드 웰링턴의 나이오 초등학교에서 만난 한인 교사 문진주씨는 "교재 없이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때문에 교육에 이념성이 들어가선 더욱 안 된다"고 했다. 문씨는 지난해 뉴질랜드에서 실시된 국민투표 관련 교육을 예로 들었다. 당시 '국기(國旗)'를 변경하는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에 앞서 학교 현장에선 학생들이 토론을 거쳐 가상 투표를 했다고 한다.

문씨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국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데 대해선 설명하지 않는다"며 "교사는 민주 시민 교육에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학생들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뉴질랜드 교사들의 민주 시민 교육 활동이 교장과 교사,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board of trusty)의 감독을 받는 것도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란 게 뉴질랜드 교육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뉴질랜드 교사들은 교과 과정을 짜면서 일일이 그 과정을 회의록으로 남기고, 그 회의록을 학부모들에게 공개한다. 뉴질랜드 문화유산부 관계자는 "교사는 철저히 중립적인 존재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편향된 교육을 하는지 감독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선거교육센터서 투표 체험하는 호주 초등학생들 - 호주 초등학생들이 캔버라의 국립선거교육센터에서 하원 의원 선거 투표 체험을 하고 있다. 호주 선거관리위원회는 이곳에서 현대사 교육은 물론 직접 투표 체험까지 다양한‘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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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호주 캔버라에 있는 나라분다 고등학교에서는 민주 시민 교육 과목 발표 수업이 한창이었다. 17세 학생이 15분간의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30여분 동안 교사와 다른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틀렸다(You are wrong)"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학교 교장 케리 그룬디씨는 "민주 시민 과목의 핵심 덕목은 학생들이 '중립적·비판적 사고'를 갖도록 하는 것이지 교사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청소년 민주 시민 교육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호주 선거위원회 관계자는 "호주에서는 3학년(한국의 초등학교 3학년)부터 10학년(고등학교 1학년)까지 '시민과 시민의식(civic and citizenship)' 교육을 연간 20시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뉴질랜드 교육연구소의 로즈메리 홉킨스 교수는 "뉴질랜드는 지난 2002년부터 민주 시민 교육 과정을 개선해 그 결과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며 "청소년 민주 시민 교육에는 법적·제도적 교육 프로그램 개혁과 함께 장기적인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호주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중립적 민주 시민 교육의 빠른 정착을 위해선 국가 차원의 교육 법제화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중앙선관委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