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인체 스캐닝으로 아바타 생성 후 의상과 도안 선택
인쇄부터 재단, 봉제까지 45분 소요… 인형놀이하듯, '나만의 옷' 만들어
미래엔 맞춤형 즉석 패션이 대세… 반품과 재고 없는 물류 혁신 일어날듯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미래패션공작소 전경

“내가 원하는 옷을 즉석에서 만들어준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개설된 미래패션공작소(My Fashion Lab)는 말 그대로 미래 패션의 모습을 체험하는 자리였다. 신체 계측부터 디자인 주문, 디지털 프린팅, 재단, 봉제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이곳에서는 즉석에서 ‘나만의 옷’을 만들 수 있다.

소요시간은 1시간. 아무리 패스트 패션 시대라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다. 과연 한 시간 만에 옷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정말 옷다운 옷이 나올까? 체험에 앞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한 시간 만에 뚝딱… ‘취향’과 ‘속도’ 모두 잡았다

옷을 만드는 과정은 총 6단계로 진행됐다. 3D 인체 스캐닝으로 아바타를 생성하고 의상과 도안을 선택해 디자인을 구상한다. 이를 토대로 완성된 패턴에 디지털 인쇄를 하고, 재단과 봉제를 해 마무리하면 끝.

먼저 신체 계측을 했다. 간단한 신상명세와 몸무게를 기재하고, 1인용 노래방처럼 생긴 3D 계측기에 들어갔다. 옷을 입은 채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똑바로 서면 3D 스캐닝이 진행된다. 과정은 1~2분 정도 소요됐다.

3D스캐너로 계측한 내용을 토대로 디지털 카탈로그에 아바타가 만들어진다. 이 아바타에 스타일과 도안을 조합해 옷을 입혀가며 디자인을 설정한다.

이전에 운동화 매장에서 3D 프린터로 발을 계측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해 보니 훨씬 단순하고 편리했다. 당시엔 맨발에 계측점을 일일이 표시했는데, 이 기계는 인체의 수분을 감지해 계측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계측을 마치자 기자의 체형을 분석한 리포트가 출력됐다. 키, 다리길이, 팔길이, 어깨너비, 가슴둘레, 엉덩이둘레 등 신체 치수를 비롯해 체형 타입과 비만도(BMI)까지 기록됐다. 리포트에 열중하는 사이 디지털 카탈로그엔 날 닮은 아바타가 생성됐다. 상체보다 하체가 튼튼한(?) A형 체형의 아바타를 보니 스캐닝 기계에 신뢰가 갔다.

다음은 옷을 설계하는 단계다. 재킷, 스웨트셔츠, 원피스, 바지 스커트 등 8가지 스타일, 30가지 도안 중 마음에 드는 걸 조합하면 된다. 사이즈는 여성 상의의 경우 스몰과 라지 사이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옷의 기장과 소매 길이, 도안의 크기와 채도 등을 원하는대로 조정할 수 있다.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아바타에게 여러 벌의 옷을 입혀가며 최종 디자인을 확정했다.

주문과 함께 패턴이 만들어졌고, 이를 토대로 디지털 인쇄(DTP, Digital Textile Printing)와 재단, 봉제 공정이 차례로 진행됐다. 인쇄된 패턴물(원단)을 자르고 박는(봉제) 과정은 사람의 손이 사용됐다. 관계자는 “실제로는 레이저 커팅기로 재단이 진행되지만, 현장 사정상 기계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아쉬워 했다. 각 분야의 담당자(혹은 기계)들은 조용하지만 빠르게 업무를 수행했다. 인쇄부터 완성까지의 과정은 약 45분가량이 소요됐다.

디자인을 주문하면 패턴이 나온다. 이를 토대로 디지털 인쇄(왼쪽)를 거쳐 재단과 봉제가 즉석에서 진행된다.

드디어 ‘나만의 옷’이 나왔다. 터치스크린으로 요리조리 구상해 만든 옷이 한 시간여 만에 실체를 드러냈다. 라벨까지 부착된 완벽한 기성품의 모습이었다.

기자가 만든 옷은 회색 계열의 카모플라주 도안으로 만든 래글런(겨드랑이에서 목쪽으로 사선으로 절개가 난 소매) 재킷이다. 신축성이 있는 도톰한 폴리에스터 원단이 사용됐다. 잠수복들이 입는 네오프렌 원단으로, 시접이 풀리지 않아 안감을 따로 넣을 필요가 없다. 놀이하듯 뚝딱 만든 옷치고는 완성도가 꽤 높았다. 도안의 인쇄 상태도 준수했다. 팔길이가 긴 편이어서 주문 과정에서 팔기장을 살짝 늘렸더니 잘 맞는다. 진짜 ‘맞춤옷’이었다.

미래패션공작소를 기획한 조하경 블랙야크 상품기획부장은 “지금까지 70여 명이 시연을 했는데 각자의 취향이 다양해 놀라웠다”며 “일반 관람객들도 큰 호응을 보였다. 내가 디자인하고 만든 옷, 세상에서 한 벌 뿐인 나만의 옷이라는 점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완성된 재킷, 한 시간 만에 만든 옷이라기엔 완성도가 높았다.

◆ 아디다스 스피드팩토리 구축… 개인 맞춤형 패션이 미래 패션의 핵심

4차 산업혁명의 시대, 패션업계도 이에 발맞춰 진화하고 있다. 최근엔 ‘좋은 것보다 다른 것’, ‘나만의 제품’을 추구하는 트렌드에 맞춰, 기술이 접목된 맞춤형 패션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아디다스의 경우 지난해 독일에 스피드팩토리를 짓고 5시간 만에 개인 맞춤형 신발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내 핸드백 브랜드 쿠론도 온라인 맞춤 플랫폼 쎄스튜디오를 통해 맞춤 핸드백을 판매하고 있다.

미래패션공작소 역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맞춤옷을 즉석에서 생산하는 것이 핵심이다. 앞서 등장한 기술보다 속도를 단축해 경쟁력을 높였다. 사용된 기술은 3D 스캔, 3D 아바타, 3D 피팅 등 가상현실 기술과 디지털 염색(DTP: Digital Textile Printing) 등이다. 패션업계에서 이 기술들이 개별적으로 사용된 적은 많지만, 이를 통합해 소비자 맞춤형으로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 부장은 “앞서 아디다스가 ‘니트 포 유’를 통해 니트를 즉석에서 만드는 시스템을 선보였는데 제작 시간만 4시간이 걸렸다. 스피드팩토리도 신발을 만드는 데 5시간이 소요된다”라며 “1시간 만에 맞춤형 의류를 만드는 건 미래패션공작소가 최초”라고 설명했다.

미래패션공작소의 제작 과정을 소개한 이미지.

주문과 함께 생산을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재고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의류 업체들은 온라인 쇼핑이 증가하면서 반품과 재고가 급증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의류 제조업체들의 이탈을 막을 대안으로도 지목된다. 관계자들은 노동집약적인 저 비용 대량생산 방식이 아닌 고부가가치 생산방식이 정착되면, 국내 의류 제조업계가 다시 활성화할 것이라 기대한다.

조 부장은 “우리가 선보인 맞춤형 현장 시스템은 소비자에겐 개인화 요구와 편의성을 충족시키고, 의류 업체엔 재고 부담을 줄이는 선진 제조 시스템이다. 세부내용을 구체화해 1~2년 안에 상용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래패션공작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섬유패션활성화사업으로 진행된 시범 사업으로, 8월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프리뷰 인 서울에서 공개됐다. 블랙야크와 건국대학교, 아이패션 비즈센터의 협업해 첨단 ICT 기술을 활용한 소비자 맞춤형 현장 생산 시스템을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