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이지만 제게도 제 2의 고향이죠."
은퇴를 앞둔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10일 광주 구장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날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은 이승엽의 마지막 광주 경기였다.
KBO리그 최초로 은퇴 투어 중인 이승엽은 광주에서 7번째로 투어 이벤트를 했다. 경기 전 어린이팬을 대상으로 한 사인회가 진행됐고, 허영택 KIA 단장과 김기태 감독이 축하를 전하고 선물을 전달했다. KIA가 준비한 선물은 옛 홈 구장인 무등야구장의 의자였다.
이승엽에게는 의미있는 선물이다. 이승엽은 프로 첫 홈런을 무등구장에서 기록했다. 1995년 5월 2일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이강철이 던진 공을 받아쳐 우월 1점 홈런으로 연결했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방송 중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영상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이승엽의 기억과 당시 기록을 참조해 홈런이 떨어진 외야 위치를 추정했다. 그리고 외야석 의자를 떼어내 선물했다.
"최고 투수 이강철 선배님을 상대로 친 홈런이라 잊을 수가 없다"는 이승엽은 "슬라이더 아니면 커브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 쳤는 지 기억이 안난다. 스윙을 가볍게 돌렸는데 잘 맞아서 홈런이 됐다. 그때는 케이블 TV가 없어서 중계 영상이 남아있지는 않아 아쉽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신인 이승엽에게 해태는 무섭고도 두려운 상대였다. 이승엽은 "추억이 정말 많다. 그때는 상대팀이 홈런을 치면 무등구장이 조용했다. 내가 김정수 선배에게 데드볼을 맞았는데 오히려 인사하고 1루로 걸어나갔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무서운 팀이었다. 해태의 위압감과 에너지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인사를 했던 것 같다. 해태가 너무 잘하는 팀이라 겁이 났다"며 웃었다.
이승엽은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이거즈 투수로 이대진 KIA 투수코치를 꼽았다. 이승엽은 "이대진 코치님의 공이 워낙 좋았고, 구위가 빼어났다. 선동열 선배님과는 1년 밖에 상대해보지 않아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내가 가장 못친 투수는 김정수 선배 공이다. 좌타자들이 김정수 선배님을 까다로워하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유독 못 쳤다"고 했다.
이승엽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전라도는 부모님의 고향이다. 아버지가 전라남도 강진, 어머니가 해남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자주 올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지금도 광주에 친척이 많이 살고있다. 이승엽은 "아버지는 기억을 잘 못하시겠지만, 어릴 때 시골을 가면 늘 광주를 거쳐 갔는데 무등구장도 지나갔다. 그때 불이 환하게 켜진 야구장을 보고, 아버지가 내게 '너도 나중에 저 곳에서 야구를 해라'고 이야기 하셨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떻게 보면 광주는 내게 제 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며 미소지었다.
대식가로 유명한 그는 "전라도 음식이 정말 너무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광주를 추억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음식이다. 이승엽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정말 좋으셨다. 어머니가 해주셨던 돼지 두루치기 맛을 잊을 수가 없다"면서 "지금도 광주 원정을 오면 밖에 나가 식당 밥을 사먹지 않는다. 호텔에서 주는 음식도 정말 맛있어서 다른 음식이 필요가 없다"며 웃었다.
창원 마산구장과 서울 잠실구장(LG 트윈스 홈), 대구구장까지. 은퇴 투어는 3번 남아있다. 정규 시즌 폐막까지 한 달도 안남은 시점이고, 삼성은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이승엽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다. 이승엽은 "그동안 다른 구장에서 은퇴 행사를 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이제는 앞으로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타석에 설 수 없기 때문에 기분이 묘하다. 이제는 정말 작별할 시기가 왔구나 싶다. 홀가분 하기도 하다"고 했다.
광주=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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