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 잘살게 되었는데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분단국가 대한민국은 단 기간에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해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한 만큼 우리의 삶도 그만큼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세계 여러 기구와 학계에서는 GDP나 무역지수와 같은 경제 지표뿐만 아니라 후생적 측면까지 고려한 국가 순위에 주목하고 있다. '차트 위 대한민국'에서는 후생적 측면에서 바라 본 각종 순위를 토대로 대한민국의 위치를 점검해봤다. 첫번째 순서는 어느 쪽 말을 믿어야하는지 헷갈리는 '성(性) 평등' 순위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전 세계 188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 성불평등지수(GII·Gender Inequality Index)'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10위이다. 반면 2016년 10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6 성격차지수(GGI·Gender Gap Index)'에서 한국은 144국 중 116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 '이코노미스트'에서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29개국 가운데 29위로 꼴찌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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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에서 조사가 시작된 2010년부터 줄곧 20위권 안팎을 차지했다. 올 3월 발표한 2015년 기준 조사에서는 세계 10위로 나타나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반면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와 이코노미스트의 '유리천장지수'에서는 내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각 조사 결과를 보면 의외의 나라가 몇 군데 있지만 대체로 경제와 복지 수준이 월등한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극명하게 조사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나라는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르완다이다. 르완다는 성불평등지수에서 159위였지만, 성격차지수에서는 5위로 나타났다.

국가별 '성 평등'을 가늠하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조사는 위에 밝힌 것 말고 여러 개가 있다. 굵직한 것만 따져도 대략 11개 조사가 나온다. 이 중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것이 유엔개발계획이 2010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성(性)불평등지수(GII·Gender Inequality Index)와, 세계경제포럼이 2006년부터 제시하는 성격차지수(GGI·Genser Gap Index)이다.

왼쪽부터 OECD,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경제포럼(WEF),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처음 국가별 성별에 따른 평등 문제를 조사, 발표한 곳은 1990년부터 각국의 교육수준과 국민소득, 평균수명 등을 조사해 인간개발 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지수인 인간개발지수를 발표해 온 유엔개발계획이다. 유엔개발계획은 1995년 4차세계여성회의를 개최하면서 남녀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남녀평등지수(GDI)와 여성권한척도(GEM)를 조사, 발표했다. 하지만 이 지수가 선진국 위주, 도시 엘리트 중심으로 지표가 설정돼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자 이를 수정한 성불평등지수(GII)로 대체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의 저명한 기업인·경제학자·저널리스트·정치인 등이 모여 경제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국제적 실천과제를 모색하는 국제민간회의이다. 유럽 내 민간기구로 시작하였으나 각계 각 분야의 저명 인사들이 참가하고 범세계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일명 '세계 경제 올림픽'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유엔의 자문 기구이기도 하다. 세계경제포럼은 2006년부터 국가별 남녀 간의 격차를 측정한 성격차지수(GGI)를 발표해왔다.

이밖에도 OECD에서 제시하는 사회제도와 젠더지수(Social Institutions and Gender Index)가 있으며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2013년부터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 정도를 보여주는 각국의 유리천장지수(Glass ceiling index)를 발표한다. 언론에서는 대략 이 정도의 통계를 제시해 각국의 성 평등 수준을 파악하고 있다.

위와 같이 한 나라의 성 평등과 관련, 조사 결과가 제각각으로 나오는 이유는 각 통계의 조사 항목과 분석방법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반된 조사 결과는 여성단체와 남성단체가 각각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인용하며 현실을 왜곡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한국의 성 평등 순위의 진실과 진짜 성 평등 수준을 알기 위해서는 각 조사 항목과 분석방법을 면밀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性평등, 여기선 세계 10위 저기선 116위]

유엔개발계획 '성불평등지수'는 젠더에 기초하여 여성이 얼마나 차별을 받고 있는지 '인권' 측면에서 측정한 지수이다. 0에 가까울수록 남녀가 평등하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함을 가리킨다. 국가 내 활용 가능한 자원과 기회의 수준에서 여성이 받은 불합리가 있었는지를 주로 보기 때문에 경제 발전과 사회제도를 어느 정도 이룩한 선진국일수록 높은 점수를 얻을 확률이 높다.

①생식 건강(모성사망비, 청소년 출산율), ②여성 권한(여성 국회의원 비율, 남녀 중등 교육 이상 받은 비율), ③노동 참여(남녀 경제활동 참가율) 등 3개 영역 5개 지표를 이용한다.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의 건강만을 보는 지표가 있다는 점이다. 이 지표는 같은 영역에서 남녀를 비교하는 다른 지표와 달리 여성의 생식·건강만을 다룬다. 출산과 관련된 여성의 건강이 여성의 기회와 남녀의 격차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 출산은 건강뿐만 아니라 여성의 개발 기회를 제한하며 그로 인해 저임금 및 저숙련 일자리에 취업할 가능성을 높이는 결정적 원인이라고 보고 주요 지표로 삼고 있다.

한국이 이 조사에서 해마다 순위가 상승하며 높은 순위를 보이는 것은 모성사망비와 청소년 출산율을 보는 첫번째 ①생식 건강 지표가 조사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지표에서 모성사망비는 인구 10만명 당 11명이고 청소년 출산율은 인구 1000명 당 1.6명 수준이다. 청소년 출산율은 전체 조사국 144개국 가운데 가장 낮아 1위이다. 여성의 사망비와 청소년 출산율이 낮다고 해서 남녀가 평등하다고 볼 수 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청소년 출산율은 조혼이나 교육 기회와 같은 불평등 문제에서도 야기될 수 있지만, 성 개방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지표를 제외한 정치·경제 활동 면을 평가하는 여성 권한과 노동 참여 지표에서 한국은 30위권의 중위권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반면 WEF의 '성격차지수'는 해당 국가의 남녀 간 격차를 측정한다. ①경제참여와 기회, ②교육 성취 정도 ③건강과 생존 ④정치적 권한 4개 영역 14개 지표에서 남녀 간의 격차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 계산한다. 세부 지표에는 '유사 업종 내 남성 대비 여성 임금' , '남성 대비 여성의 경제 참여율', '남성 대비 여성 전문 기술 인력 비율' 등이 있다.

해마다 이 지수가 발표되면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 한국의 순위가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 전통적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한 중동 국가보다 낮기 때문이다. '성격차지수'는 말 그대로 남녀 간의 격차만을 보기 때문에 여성의 전반적인 지위와 삶의 수준이 높더라도, 남성에 비해 떨어진다면 순위가 낮아진다. 예를 들어, 남녀 경제 참여율이 모두 비슷하게 낮은 후진국보다 전반적인 경제 참여율은 높으나 남녀 차이가 큰 선진국의 순위가 더 낮은 것이다.

또한 남녀가 완전히 평등한 상태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보다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비율을 보이면 순위가 올라간다는 문제점도 있다. 우리나라의 문자해독률은 남녀 모두 98% 이상으로 100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지만, 순위는 22위에 불과하다. 반면 레소토라는 남아프리카의 국가의 문자해독률은 남성이 66%, 여성이 85%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높다. 이 국가는 이 부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학 교육 정도를 나타내는 고등교육 취학률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은 대학 교육을 받은 남성의 비율이 108%, 여성의 비율이 81%로 고등교육 취학률에서 112위이다. 남성의 비율이 여성에 비해 높게 집계됐는데 남성의 군 복무 기간이 대학에 다닌 기간으로 산정됐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한 국가는 카타르다. 카타르는 여성의 고등교육 취학률이 남성보다 월등히 높다. 남성은 7%에 불과하지만 여성은 46%에 이른다. 역차별을 완전한 남녀 평등의 상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와 나라별 특수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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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스위스 베른 연방의회 앞 광장에서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대, (우) 스위스 여군

유엔개발계획에서 발표한 성불평등지수를 차지한 나라는 0.40의 지수를 얻은 스위스다. 경제 발전과 높은 복지 수준을 이룩한 스위스는 생활 수준 자체가 높은 것은 물론 남녀 간의 격차도 크지 않다. 청소년 출산율을 제외하고 모든 평가 항목에서 우리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여성 인구 10만명 당 사망하는 사람이 5명으로 11명인 우리보다 낮으며,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28.9%였다. 우리나라는 16.3%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성 평등 수준은 어떤 조사에서도 상위권이다. 스위스 역시 처음부터 남성과 여성이 평등했던 것은 아니다. 스위스의 여성 참정권은 남성 참정권이 도입된 지 70년 만에 생겼다. 영국,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최장 기간이다. 오랜 기간 성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지금의 스위스를 만들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스위스 의회는 '남녀 임금평등법'을 추진했다. 이미 36년 전 스위스 헌법에는 임금차별 금지 조항이 명시됐지만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 18.9%(2012년 통계)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기업의 임금 지급 실태를 공개하면서 형평성에 맞는 임금을 책정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위) 노르웨이 여군 /AFP,(아래) 아이슬란드 여성 의원

여성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징병제가 존재하는 스위스는 최근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스위스는 만 18세 이상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여성은 원할 경우 군인이 될 수 있다. 2010년 스위스에서는 신체 조건 때문에 군 복무를 못 하는 남성에게 면제세를 부과했다가 이 남성이 유럽 인권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남성은 승소한 후 세금 납부 대신 군 복무를 선택했다.

여성징병에 관한 논의도 이 사례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스위스에 앞서 현재 북유럽 국가들이 하나 둘 여성징병제를 도입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이다. 네덜란드 여성 국방장관인 제닌 헤니스 플라스하르트는 "여성을 군 징집 대상에 포함하려는 것은 당장 병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지난해 나토 국가 중 최초로 여성 징병제를 실시한 노르웨이 역시 군사적 목적보다는 양성 평등 실현 차원에서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당시 사회주의좌파당 소속 여성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남성도 가정에서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여성도 국방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여성 군복무 의무화 법안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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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낮은 순위를 기록해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에서 7년 연속 1위를 하는 국가는 아이슬란드이다. 아이슬란드는 성격차지수 뿐만 아니라 OECD에서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아이슬란드가 우리와 크게 다른 점은 정치 참여도와 경제 활동면에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여성의원 비율은 40%로 세계 평균인 22%를 훨씬 웃돈다. 현재 10명의 장관 가운데 4명이 여성이고,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40% 이상의 여성장관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 전문직도 남성보다 1.3배쯤 많았다. 여성이 남성 수입의 89% 수준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정치 참여 기회와 경제 활동이 처음부터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심각한 남녀불평등을 겪었던 아이슬란드는 1970년대 여성은 남성 임금의 60%만을 받았으며 여성의원은 당시 9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0년 직선제로 뽑힌 세계 최초 여성 대통령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가 연임에 계속 성공하면서 여성 지위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졌다. 당원 모두가 여성인 정당도 나왔고, 1999년에는 여성의원 비율이 30%까지 올라갔다.

현재 세계 1위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잔재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이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성 평등과 관련 통계에 대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순위에만 현혹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각 통계별로 시사하는 바와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각각 세부 지표를 자세히 살펴보고 그 안에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건강과 교육 수준 면에서 훌륭한 수치를 보이고 있지만, 조사에 따라 이 점을 지나치게 많이 반영하는 것도 있고 제대로 된 값을 측정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어느 조사이든 여성의 경제 활동 진출과 정치 참여 면에서는 선진국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