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을 향한 예찬은 부질없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풍경의 미학이 있고,
경계를 넘어선 것이 있다.
"설악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설악은 이미 축소되었다.
말로 규정하기엔 설악이 주는 감동의 파동이 너무 깊다.
말없이 바라만 보는 것이 최고의 감탄일 수 있음을
숨넘어가는 설악의 긴 오르막에서 투정 한 번 하지 않고
낡은 등산화 끈 질끈 묶고 오르는 사내는 알고 있다.


"거 좀 조용히 합시다!
1275봉을 넘는 구름의 속삭임이 하나도 안 들리잖소!"
라고 성내려다 몇 번을 참아 삼키고는
잠든 딸 얼굴 매만지듯 슬쩍
분비나무 껍질 어루만지고 흘러가는
오래된 사내의 뒷모습.
'공룡능선' - 조국제

‘설악산 흘림골의 가을’ - 이신영
‘십이선녀탕 추경’ - 이만욱

그래서 설악을 찾았다.
지금쯤 천불동에 고운 연지곤지 새색시 내려앉았을 텐데
지금쯤 흰 고래 닮은 구름이 대청봉을 넘고 있을 텐데
지금쯤 소청산장에서 마시는 커피는 믹스커피라도 감동일 텐데
지금쯤 만경대에 오르면 세상 모든 걱정 잊을 수 있을 텐데
설악과 설악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 하는 수 없이 설악을 찾았다.
가을이 아닌 설악의 가을이었다.

‘단풍옷 입은 설악’ - 이한구
가을이 내려앉은 설악산 중청 일대. - 정정현
‘만경대에서 본 설악’ - 이신영

첫 눈에 반해 좇아 들었다.
돈도 명예도 팽개치고 위태롭게 마음 주었다.
입술은 처음 보는 붉은색, 머릿결은 처음 보는 검은색이었다.
사람들이 다 말려도 그때는 들리지 않아
눈 멀고, 마음 멀어, 돌아 갈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었을 때
정신 차리니, 아뿔싸! 남설악 흘림골 속,
처음 만난 미인이었다.

‘울산바위에 깃든 가을’ - 임흥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