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사드 덮고 모든 교류 정상화]

한·중 양국이 31일 '사드 합의문'을 발표했다. 11월 베트남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한·중 정상회담도 열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내 중국 방문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로써 작년 7월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진행된 중국 측의 일방적·폭력적 경제 보복도 1년 3개월여 만에 풀릴 것으로 보인다. 북핵 폐기를 위해 중국과의 협력이 긴요한 것은 사실이다.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드 합의 내용에 피해자인 우리 측 입장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마치 우리가 가해자인 듯하다. 특히 우리의 미래 주권 포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은 심각하다.

사드 합의 하루 전인 30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국회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고, 미국 MD 불참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 장관의 국회 발언 자체가 중국 측과의 사전 합의 사항일 가능성이 크다. 문서로는 남기지 않되 중국 측이 듣고 싶어하는 '3 No'를 말로 해준 것이다.

사드는 우리가 배치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다. 북핵·미사일 때문이다. 한국 사드는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군사 장비 배치는 한 국가의 고유한 군사 주권이다. 중국이 자국 내에 한국을 감시하는 레이더를 배치해도 우리가 항의한 적이 없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상대국 주권에 대한 이유 없고 난폭한 유린이다. 우리가 이 엄연한 사실에서 물러서면 앞으로 사드 보복을 넘어서는 심각한 사태를 당할 수 있다. 중국은 그런 나라다.

그런데 정부는 중국에 사드의 추가 배치가 없을 것이라고 사실상 약속했다. 사드는 북의 미사일 능력이 우리 기존 방어 체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다. 사드 1기의 방어 권역은 남한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다른 3분의 2는 사실상 무방비다. 여기에 있는 우리 전략 시설들은 없어도 되는 것인가.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장 2기를 추가로 들여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국가 안보를 책임진 정부라면 이 문제를 최우선으로 검토하는 게 마땅하다. 그에 앞서서 세상에 주권 국가가 다른 나라에 '우리는 앞으로 어떤 군 장비는 배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정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것뿐이라고 할지 모른다. 국제 관계에서 그런 양다리 걸치기는 통하지 않는다.

한·미·일 3국은 현재 대북(對北) 군사협력 관계에 있다. 일본까지를 포함한 3국 군사동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가든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제3국에 '한·미·일 동맹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줘야 하나. 시진핑 2기의 중국은 노골적으로 패권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장차 중국의 패권 추구가 북핵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정부는 눈앞의 이익에 매달려 경솔하게 주권 사항을 처리하지 말라.

사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갈등으로 중국은 아무런 실질적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롯데 등 중국 진출 기업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국내 관광업계가 입은 피해도 막대하다. 이 피해가 100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모두 국제 규범과 상(商)관례를 위반한 폭력적 보복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이에 대해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없었다. 우리 측이 항의했다는 흔적도 없다. 그저 보복을 풀겠다고 하니 감지덕지하는 건가.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서로 주권을 존중하고 국제 규범을 따르는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가지 않으면 이번 같은 일은 언제든지 재발한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이 그렇다. 이번에도 어떤 재발 방지 장치도 마련하지 못하고 지나가고 말았다.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나라가 원칙 없이 그때그때의 작은 이익을 좇아 흔들리면 주권과 자존은 쉽게 증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