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2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국이 사드 추가 배치, 미 MD(미사일 방어) 참여, 한·미·일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3불(不)' 입장을 표명한 것과 관련해 계속해서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에는 신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며 '3불' 이행을 압박했다. 도저히 외교 용어라고 할 수 없는 무례한 언사다. 상대국이 우리 주권 사항에 대해 대놓고 간섭하고 나오는데 강경화 장관은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 방중(訪中)에 앞서 재중 한국 기업의 어려움 해소와 양국 인적 교류 활성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중국 방문에 목을 맨 것 같다. 외교부는 회담 뒤 대통령 방중을 성과인 양 발표했지만 중국 측은 발표하지도 않았다. 관영 언론에서 짧게 한마디 한 게 전부다. 이날 왕 부장은 약속보다 30분 늦게 왔지만 강 장관은 "(이유를) 잘 모른다"고 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31일 '사드 봉합'을 발표하며 "앞으로 사드 문제는 거론 안 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로부터 잇달아 "사드를 처리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때마다 정부는 사드 내용만 빼놓고 브리핑했다가 중국 측 보도가 나온 뒤에야 해명에 나섰다. 중국의 무도하고 폭력적인 사드 보복으로 인한 우리 기업의 피해에 대해 정부가 사과와 시정을 요구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문 대통령의 다음 달 방중과 시 주석의 평창올림픽 참석 추진이 아무리 중요한 이벤트라고 해도 지금의 대중 외교는 이해하기 힘든 저자세다. 주권 훼손만이 아니라 국격까지 상처를 받고 있다.

중국은 사드 협상 과정에서 사드 레이더 중국 방향에 차단벽 설치와 성주 기지에 대한 현장 조사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 국가의 핵심 방어 자산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주권을 훼손하는 행위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엇에 쫓기는 듯 '3불(不)'을 합의해줬다. 스스로 주권을 훼손하면서 운신의 폭을 좁힌 대가를 앞으로 얼마나 치러야 할지는 지금 중국 태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문 대통령과 강 장관에게 "사드를 단계적(階段性)으로 처리하라"고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단계적이란 표현은 중국어로 '현 단계(at the current state)'라는 의미"라고 했지만 황당한 소리다. '발전의 중간 과정'이란 뜻이다. 앞으로 이를 빌미로 한국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려 할 것이다.

중국은 평등이란 기반 위에서 다른 나라와 지속적으로 접촉했던 역사가 없다. 주변국에 대해선 '조공(朝貢) 외교'만 있었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나라가 이런 중국을 상대할 때는 항상 원칙을 지켜야 한다. 지금은 원칙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이 굴욕감을 느낄 정도로 저자세다. 한국은 이래야 할 정도로 형편없는 나라가 아니다. 정부가 이토록 중국에 저자세인 이유를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