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A씨는 올해 정부가 주는 일자리 지원 자금을 신청하려다 포기했다. 지원 자금을 신청하면 아르바이트생 한 명당 월 최대 13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일자리 안정 자금을 받으려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점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은 한두 달 일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새로 사람을 뽑을 때마다 고용보험 가입·해지 절차를 반복하고 안정 자금을 재신청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A씨는 "직원들도 '급여가 줄어든다'며 보험 가입을 원치 않았다"면서 "일자리 안정 자금은 우리 같은 영세 업체엔 있으나 마나 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 충격을 줄이기 위해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 자금'을 영세 사업주에게 지원하기로 했지만, 정작 상당수 사업주와 근로자는 실익이 없다며 지원받기를 꺼리고 있다. 지난 1일 신청을 받기 시작한 이후 9일까지 신청 건수는 1000건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자리 안정 자금은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월급 190만원 미만인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13만원을 사업주에게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는 당초 30명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 299만8000명의 78.9%인 236만5000명에 대해 일자리 안정 자금 신청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사업주가 안정 자금 신청을 원하지 않는 이유는 고용보험 가입 때문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건강보험·국민연금·산재보험도 가입해야 하는데, 영세 자영업자에겐 4대 보험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5인 미만 도·소매 업체에서 최저임금(월 157만3770원)을 받는 근로자가 올해 새로 4대 보험에 가입할 경우, 4대 보험료로 사업주는 약 15만원, 근로자는 약 13만원을 각각 부담해야 한다.

사업주 입장에선 안정 자금 지원액보다 더 많은 돈을 보험료로 내야 하고, 근로자 입장에선 올해 최저임금 인상 차액(월 22만1540원)의 60% 정도가 보험료로 나가는 셈이다.

정부는 4대 보험료 때문에 안정 자금 신청을 주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업주와 근로자의 4대 보험료를 각각 올해 10만원 안팎 경감해 주기로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보험료 경감과 안정 자금 지원이 한시적인 것으로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서울 강서구의 한 편의점주는 "안정 자금을 받으려고 4대 보험에 일괄 가입했다가 내년에 지원이 끊기면 보험료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했다.

안정 자금 신청 절차가 복잡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각 사회보험 공단 인터넷 사이트에서 온라인 신청하거나 각 공단 지사에 방문하면 된다고 안내하지만, 영세 사업주 입장에선 '고용보험 성립 신고서', 지원 대상 근로자의 '피보험 자격 취득 신고서', '임금 대장' 등을 준비하기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서울 방배동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B씨는 "정부가 일자리 안정 자금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고 홍보해 들어가 봤더니 나 같은 노인이 정보를 찾기엔 불편해 전화로 다시 문의했고, 준비해야 할 서류도 복잡해 신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사업장에선 급여 기준(월 190만원 미만)이 월급 상한액으로 정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용주 입장에선 정부에서 지원 자금을 받기 위해 종업원에게 월급을 190만원보다 적게 주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는 올해 경비원 월급을 189만원으로 정하기도 했다. 한 노무법인 관계자는 "일부 사업주는 정부가 사후에 일자리 안정 자금 부정 수급자를 적발해 지원금의 최대 5배에 해당하는 제재 부과금을 징수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