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외 금융자산 투자 정치보다는 경제논리 지배.. '국채 매도는 중국에 자충수' 지적도
2016년 보유 미국 국채 1800억불 감축은 위안화 절하 압력 덜기 위한 달러자산 매도 차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중국을 방문한 작년 11월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500억달러가 넘는 경제무역협정으로 미국 달래기에 나섰지만 새해 들어 미⋅중간 무역마찰 파열음이 커지는 형국이다.

새해 벽두 중국이 미국의 국채와 주식을 내던질 수 있다는 금융 공격 카드를 흔들고 있다. 지난 10일 중국 관리가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을 통해 미국 국채 매각 가능성을 흘리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1일자 국책연구소 연구원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 증시가 새해 20% 하락할 리스크가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 국채에 주로 투자하는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중국 국가외화관리국은 11일 웹사이트에 올린 해명을 통해 블룸버그의 기사를 두고 가짜뉴스이거나 잘못된 취재원을 인용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새해들어 알리바바가 미국 송금서비스 업체 머니그램을 인수하려던 12억달러 거래가 좌절되고, 화웨이의 AT&T를 통한 미국 스마트폰 시장 공략 계획이 막판에 무산된 배경에 미국 당국의 압력이 있던 것으로 알려진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 카드까지 다시 들고 나오면서 양국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미국과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냈다는 소식도 미⋅중 관계 긴장도를 높인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가 12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무역흑자는 전년 대비 17% 줄었지만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는 10% 증가한 2758억달러로 종전 최고치인 2015년의 2610억달러를 넘어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작년 11월초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중 기간 2535억달러에 이르는 경제무역 협정이라는 선물을 안기면서 다진 우호 분위기와는 다르다. 양국 간 갈등 고조는 북핵 대화 국면 조성에 불리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문제와 미⋅중 무역문제를 연계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관심은 중국이 보유한 미국 자산 매도라는 금융공격을 단행할 지 여부다. 최근 5년간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와 미국 자산투자 추이는 중국의 미국 금융자산 투자가 주로 정치보다는 경제논리에 따라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논리가 지배한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

중국은 미국 국채 보유국 1위 자리를 2016년 10월 일본에 내줬다. 위안화 절하 저지를 위해 달러자산을 매도해야했기 때문이다. 실제 2016년 한햇동안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1877억달러 감소했다. 하지만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지난해 6.36% 상승하면서 3년 연속 절하세가 반전됐다. 2016년말 1조 584억달러까지 떨어졌던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지난해 10월말 1조 1892억달러로 불어났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지난해 6월 일본을 제치고 다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로 등극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 변화가 정치보다는 경제논리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적 이유로 중국이 미국 국채를 던질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 한번에 수천억달러를 흡수할만큼 마국 국채를 대체할만한 유동성이 큰 자산시장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 가능성이 낮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천둥소리는 크지만 비는 많이 오지 않는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며 내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WSJ는 특히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가 되레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채 매도는 국채 금리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중국 인민은행에 금리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돈은 금리가 높은 곳을 좇는다. 미국의 금리상승은 중국에 자본유출 압력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미국은 지난해 3차례 금리인상에 이어 올해도 추가 금리인상이 점쳐지고 있는데다 35%의 법인세율을 21%로 낮추기로 했다. 중국의 자본유출 압력요인들이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강세가 중국의 자본유출 압력을 키우고 위안화 절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인민은행이 유동성 긴축에 나서겠지만 이는 경제성장 앞날에 대한 우려를 키울 것”(BOE 데이비드 우 신흥시장 투자전략담당)이라는 진단은 미국 국채 매도에 대한 중국의 딜레마를 부각시킨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영문판은 알리바바 계열 금융사 앤트파이낸셜의 미국 송금서비스업체 머니그램 인수가 좌절된 후 논평을 통해 중국의 보복조치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국이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카드중 하나가 금리인상이다. 지민(紀敏) 인민은행 연구국 금융시장담당 부국장이 단기적으로 금리인상 여지가 있다고 언급하는 등 중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소식이 이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중국은 지방정부 부채억제를 위해 인프라 투자에 속도조절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데다 부동산 투자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어 금리인상은 중국 경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외환관리국이 블룸버그 보도 부인 해명을 올리면서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설로)공황에 빠진 미국이 한시름 놓게 됐다고 전했지만 중국 역시 정치적 이유만으로 미국 국채 매도 카드를 쓸 여지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중국 투자 최대 해외 금융자산은 미국 자산

중국은 3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 운용 말고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주식 채권 펀드 등 해외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외환관리국은 2015년 6월말 통계부터 이를 발표해왔다. 이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줄곧 중국이 해외에 투자하는 최대 금융자산(외환보유액 운용 제외)대상국이었다. 중국 당국이 미국 국채를 매도한 2016년에도 중국이 보유한 미국 금융자산은 146억달러 늘었다. 지난해엔 상반기에만 126억달러 증가했다.

중국의 해외펀드라할 수 있는 QDII(적격 내국인 기관투자자) 국가 및 지역별 투자 자산에서도 미국은 홍콩에 이어 2위 자리를 지켜왔다. 조선비즈가 하나금융투자에 의뢰해 중국의 시장조사업체 윈드 통계를 기초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QDII 투자자산의 15.6%를 차지했던 미국 자산은 지난해 1~9월 29.9%로 늘어났다. QDII를 통한 미국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액도 2012년 66억위안에서 올 1~9월 165억위안으로 불어났다.

주식 채권 펀드 워런트 등에 투자하는 QDII의 투자자산 가운데 60~70%는 주식이다. 지난해 1~9월 주식투자 비중은 64.2%에 달했다. QDII는 중국내 개인과 기업들의 자금을 받아 운용한다. 자기 책임으로 투자한 경우에도 손실이 생기면 보전해달라고 금융당국에 요구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중국이 주식 매도 카드를 밀어부칠 가능성도 크게 낮아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미국 국채 던지기를 할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경제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경고음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알리바바 계열 금융사 앤트파이낸셜의 머니그램 인수 포기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이달 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영문판에 중국과 미국의 긴장 조절이 필요하다는 제하의 논평을 올렸다. 중국의 투자와 교역에 대한 회의론이 워싱턴을 덮으면서 양국 관계가 새해 평탄치 않은 출발을 하게됐다고 진단한 이 논평은 미국이 미국 정부가 무역 문제에서 계속 고집한다면 중국이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0일 보도에서 화웨이가 당초 9일 발표하려던 AT&T와의 스마트폰 유통 협력 계약이 미국 당국의 정치적 압력 때문에 급작스럽게 취소됐다며 상황이 악화되면 중국이 보복조치를 검토해야한다는 전 중국 상무부 관료의 발언을 전했다.

11일엔 가오펑(高峰) 중국 상무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301조 조사 후속조치가 새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미국이 국내법에 근거에 중국에 대한 무역조사를 개시한 것은 현재의 세계무역기구(WTO)체제를 파괴하는 것으로 미국이 일방적인 보호주의 조치를 고집해 중국의 이익을 해칠 경우 중국은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중국의 합법적인 권익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대응 조치로는 WTO를 통한 제소와 미국산 농산물 등에 대한 검역 강화를 통한 수입억제가 우선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보복 카드로 미국 금융자산 매도를 단행하는 건 중국 경제에 자기 발등을 찍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감안할 때 후순위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가 인프라투자와 법인세 감면으로 더 많은 자금 조달 필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는 ‘설(說)’ 자체가 미국에 압박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 중국 당국이 미국 국채 매도를 검토하고 있다는 블룸버그의 보도 직후 뉴욕채권시장에서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장 초반 10개월래 최고치인 2.597%까지 치솟았다. 국채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2009년에도 중국은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미국 경제 문제가 미국 국채 수익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미국 국채의 최대 큰손인 중국의 매도 우려가 제기됐었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중국 시장 팀장은 “중국이 달러자산 매도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미국 국채 매도설은 미국에 압박요인이 될 수 있어 중국이 의도적으로 흘리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고 전했다.

◆친(親)대만파 레이건 따라하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자주 비유돼왔다. 비정치인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외에도 ‘위대한 미국’이라는 구호나 법인세 대폭 감면, 군사력 강화 등이 레이건 시절의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억제 수단으로 대만 카드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았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 관계법(TaiwanRelations Act)을 제정했다.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 미국이 대만카드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둔 것이다.버락 오바마 정부도 집권 8년간 3차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2016년말에는 대만과의 고위급 군사교류를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만 카드 활용은 더 공격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2016년 12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통화를 했다. 미국 대통령이나 당선인이 대만 총통과 통화한 것은 1979년 단교 이후 37년 만이다. 미국은 지난해 대만에 14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판매했고,지난해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는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과 강력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달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과 미국 해군 함정의 기항지 교차 방문을 승인하는 국방수권법에 서명했다.

이달 9일엔 미국 하원이 ‘대만여행법’을 통과시켜 1979년 이후 유지해온 내각 고위급 인사의 대만 방문 제한조치를 해제했다. 미국재대만협회(AIT) 등 민간기구를 통한 비공식 채널만 유지해온 기존 외교방침을 바꾼 것이다. 하원은 이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대만이 옵서버 자격을 획득하도록 미 국무부가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도 통과시켰다. 두 법안은 상원 통과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절차를 거친 뒤 발효된다.

트럼프의 대만 카드 흔들기는 1982년 당시 레이건 정부가 대만이 요구한 ‘6개 보장(Six Assurances)’을 인정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종료 시한을 정하지 않으며 중국과 사전 합의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환구시보는 11일자 보도에서 대만여행법을 “대만파괴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만여행법이 입법되기까지 갈 길은 멀지만 하원 통과 자체가 미국 내 대중 분위기 변화를 보여준다”며 “미국이 대만 문제를 중국과의 게임에서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14일자에서도 “대만여행법이 발효될 경우 중⋅미 관계가 심각한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레이건은 당시 도광양회(韜光養晦 · 자신의 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의 중국과 수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치는 ‘굴기(崛起)의 중국’과 맞붙고 있다. 미⋅중 관계 긴장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