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명(國名)’을 둘러싼 그리스와 마케도니아(Macedonia)의 27년간의 분쟁이 해결 기미를 보이고 있다.

조란 자에브 마케도니아 총리는 25일(현지 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기자회견 중 전날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만나 양국의 국명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마케도니아는 나라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리스 북부 주(州)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국명이 그리스의 오랜 역사와 유산을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 1991년, 마케도니아 독립 뒤 분쟁 시작…그리스 “영토·역사 침해”

갈등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케도니아는 당시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독립하면서 나라 이름을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바꿨다.

그리스는 이에 즉각 반발했다. 그리스 내 북부 지역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통치했던 고대 그리스 왕국의 이름 ‘마케도니아’를 딴 마케도니아주(州)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입장에서는 마케도니아가 2300년이 넘는 고대 왕국의 역사를 빼앗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자국 마케도니아주의 영토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발칸 반도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지도. 황색 부분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주(州)로, 테살로니키가 마케도니아주에 있다.

그리스는 또 마케도니아인들을 ‘정통 마케도니아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로마제국 시대에 그리스에 살던 고대 마케도니아인, 즉 현재 그리스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그리스인들만을 마케도니아인으로 인정할 수 있고, 지금 마케도니아인들은 고대 그리스나 알렉산더 대왕과 상관없는 슬라브계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자국 영토 대부분도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에 포함됐다면서 국명을 바꾸지 않았다.

◆ 마케도니아, 국제 무대서 고립…그리스, 국명 변경 요구 시위까지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를 외교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마케도니아의 국명 변경을 요구했다. 1992년에는 마케도니아에 무역제재를 단행하고, 인접 국경을 폐쇄하기도 했다. 빌야나 반코브스카 스코페대 교수는 NBC뉴스 인터뷰에서 “이는 이미 황폐화됐던 마케도니아에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초래했다. 범죄조직, 밀수, 회색경제(공식 통계에 계정되지 않은 경제 활동)가 성행했다”고 했다.

결국 유엔(UN)이 나섰다. 유엔은 1993년 마케도니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갈등 완화를 위해 마케도니아 국명을 ‘전 유고 공화국 마케도니아(FYROM)’로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2013년 3월 16일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서 흩날리고 있는 마케도니아 국기.

그럼에도 분쟁은 격화됐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국기도 걸고넘어졌다. 마케도니아의 초기 국기에 알렉산더 대왕이 사용하던 상징인 ‘베르기나 별’이 들어간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마케도니아는 결국 1995년 국기 무늬를 태양으로 바꿨고, 이를 계기로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는 임시협정을 맺었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를 FYROM으로 인정하고 외교관계도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06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마케도니아가 수도 스코페에 있는 공항 이름에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리스는 국제무대에서 마케도니아를 압박했다. 그리스는 2008년 마케도니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명을 둘러싼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마케도니아의 유럽연합(EU) 가입도 막았다. 이에 마케도니아는 그리스가 1995년의 협정을 위반했다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양국의 분쟁은 최근까지 지속됐다. 이달 21일에는 그리스 마케도니아주 테살로니키 시민들이 마케도니아의 국명 변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NBC뉴스는 이달 중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그리스인 대다수가 마케도니아가 어떤 식으로든 '마케도니아'라는 단어를 국명에 사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 양국 정상 분쟁 해결 의지 표명…종식 가능할까 의견 분분

국명 분쟁이 끝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양국 지도자가 국명 분쟁 해결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다보스 포럼에서 자에브 마케도니아 총리와 회담 후 “우리는 이미 진행 중인 협의를 강화하기로 했다”며 “단지 이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양국 관계를 견고한 토대 위에 두길 원한다”고 밝혔다.

수만명의 그리스인이 2018년 1월 21일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주(州) 주도 테살로니키에서 마케도니아의 국명 사용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케도니아는 분쟁 해결 의지 표시로 알렉산더 공항의 이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자에브 총리는 "우리가 국명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공항과 도로의 이름을 변경하기로 했다"고 했다. 공항의 새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양국의 국명 분쟁 해결 가능성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태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조나단 에알 연구원은 "지난 몇 년 중 가장 낙관적인 상황"이라며 "문제는 그들이 정말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여부"라고 말했다.

마케도니아의 새 국명으로는 ‘뉴 마케도니아’ ‘노던 마케도니아’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