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더불어 제3섹터 역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더나은미래'는 현장 전문가들과 함께 신년을 맞아 기부·모금, 비영리, 사회적경제, CSR 등 제3섹터가 주목해야 하는 2018년 공익 트렌드를 전망해봤다.

지난해 ‘쇼미더 트러스트’ 캠페인이 출범했다.

#1. 공익법인 투명성 강화, 내외부에서 탄력받는다

지난해 화두가 됐던 '비영리 공익법인 투명성' 문제는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월에만 비영리 공익법인 비리를 둘러싼 사건 두 건이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새희망씨앗이나 이영학 사건 같은 이전의 사건들이 비영리 콘셉트를 이용한 일반인의 '사기 행각'이었다면, 올해 보도된 두 사건은 비영리의 기본 가치인 책무성을 훼손했다는 데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밝혔다. 공익법인의 관리 감독 부실 지적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100대 과제 중 하나로 '시민공익위원회 설치'를 내세웠다. 현재 윤호중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이은권 의원(자유한국당)이 시민공익위원회 설치를 포함한 '공익 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나란히 발의한 상태다. 공익법인 논란이 계속되며 올해 법안 통과에도 탄력이 더해질 전망이다.연이은 투명성 이슈로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비영리 공익법인의 자체적인 자정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나눔국민운동본부, 한국가이드스타, 한국비영리학회 등 15곳 비영리단체 및 협회가 모여 믿을 수 있는 기부를 위한 공익 캠페인 '쇼미더 트러스트(Show Me the Trust)'를 출범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명동에서 시민들이 자선냄비에 성금을 기부하고 있다.

#2. 신뢰할 수 있는 비영리단체가 살아남는다

전국으로 퍼진 '기부 포비아'에도 불구하고 대형 모금 단체의 기업 및 개인 기부금 규모는 크게 줄지 않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2017년 전체 모금액이 5996억원으로 전년(2016년 5740억) 대비 약 200억원이 늘어났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월드비전 등의 대형 단체들 또한 정기 후원 규모의 변동은 거의 없는 상태다. 황성주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본부장은 "신규 기부자들의 참여도가 소폭 하락했지만 정기 기부자들의 후원 중단은 많지 않아 전체 기부금 규모에 변동이 적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기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모금단체의 양극화라는 과제를 남겼다. 김효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국민참여추진단장은 "연이은 비영리 투명성 이슈의 여파로 올해는 기업 또는 개인 기부자들이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몰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민경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은 "기부자들이 참여를 통해 후원을 직접 경험하고 공유하고자 하므로 이제 후원자들을 '기부자'를 넘어 '서포터'로 바라봐야 한다" 고 말했다. 이서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팀 팀장은 "온라인 기부 시장이 늘어나는 만큼, 단체의 투명성과 정보 공개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셜벤처 집합지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를 방문했다.

#3. 청와대가 주목하는 사회적 경제

새 정부 들어 '사회적경제'가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는 사회적경제 관련 과제가 대거 포함됐고, 지난해 10월에는 대통령이 소셜벤처 집합지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를 방문, "우리 경제가 직면한 고용 없는 성장과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사회적경제를 설명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과 '2018년 경제정책 방향'에는 좀 더 구체적인 로드맵이 실렸다. 정부는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과 제도 정비를 추진해 '통합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사회적경제기본법·사회적가치실현기본법·공공기관 판로지원법 등 사회적경제 관련 법령이 제정되고, 기재부를 중심으로 관계 부처 협의체 역할을 하는 정책 컨트롤 타워도 수립될 예정이다.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도시재생 뉴딜'도 본격 추진 단계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14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9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에서 도시재생 뉴딜 시범 사업지 68곳이 발표됐다.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에 있어 사회적경제 조직을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는 모양새다. 관련 업계에서는 청년 사회주택, 취약 계층 사회주택 등 다양한 사회주택 모델과 시민 자산화 사업에 대한 사회적경제 조직의 참여를 주요 화두로, 도시재생에서 사회적경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기대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4. 임팩트 금융, 판 커진다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 기업·자활 기업 등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금융 인프라도 확충된다. 정부는 신용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 등 정책 자금 규모도 대폭 늘려 금융 접근성을 높일 전망이다. 특히 올해 300억원 규모의 사회투자펀드를 신설, 이후 5년간 최대 1000억원 규모까지 확충하며, 100억원 규모의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모태 펀드, 소셜벤처 대상 1000억원 규모 '임팩트 투자 펀드'도 조성한다.민간에서도 '임팩트 금융'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달 21일, IBK투자증권은 성장사다리펀드의 사회적기업 전문 투자펀드 운용사(GP)로 선정됐다. IBK투자증권은 성장사다리펀드 출자금을 토대로 110억원 규모의 '사회적기업 전문 사모투자신탁 1호' 를 조성할 계획이다.

오는 2월 22일에는 한국에서도 임팩트 금융의 민간협력형 정책기구인 '임팩트금융국가자문위원회(NAB)'가 출범한다. NAB는 임팩트 금융의 국제기구인 GSG(Global Social Impact Investment Steering Group)의 각국의 대표 기구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총 15개국과 EU가 GSG에 참여하고 있다.

제1회 사회혁신 교육자 네트워크(ENSI) 컨퍼런스 현장.

#5. 대학가에 부는 공익 바람… 키워드는 '사회혁신'

올해 대학교 캠퍼스에는 '사회 혁신'의 바람이 거세질 전망이다. SK는 5년간 100억원을 연세대에 지원해 사회 혁신 인재를 양성하며, 이화여대도 SK행복나눔재단과 MOU를 맺어 사회적경제 석·박사 협동 과정 재학생들에게 3년간 장학금을 제공한다. 한양대는 2018년 1학기부터 학부에 '사회혁신융합전공'도 개설해 운영한다. 이화여대 사회적경제 협동 과정 주임 교수인 조상미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사회 혁신 인재를 양성하는 10여 곳 대학들이 '사회 혁신 교육자 네트워크(ENSI)'를 구축했다"며 "대학들도 사회 혁신 방향으로 인재 양성을 고민 중인 곳이 많다"고 했다. 정부도 힘을 보탠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지원해온 '사회적 경제 리더 과정' 운영 기관의 수를 확대, 올해는 서강대·한양대·국민대·대구가톨릭대·충북대 등 5개 대학에 1년간 총 5억8000만원을 지원한다. 지역에서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도시재생지원센터 등 지역 기반 조직을 활용, 활동가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실무 및 전문 교육 시스템도 구축된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 모습.

#6. 전국으로 퍼지는 사회혁신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사회 혁신'도 전국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행안부는 오는 2월, 지자체를 대상으로 지역 거점별 소통 협력 공간(가칭 사회혁신파크) 공모 사업을 진행한다. 지자체에서 토지와 건물을 제공해 사회 혁신의 거점 공간을 조성해야 하며, 국비와 지자체 예산이 5대5로 매칭된다. 노홍석 행안부 사회혁신추진단 기반조성팀 과장은 "시민사회 주체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며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도록 정부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주요 방향"이라면서 "각 지역의 사회 혁신 성공 사례를 모아 확산하는 것은 물론, '실패 박람회'를 열어 실패 사례에서 사회 혁신의 가치를 재발견해보는 혁신의 장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 사회 혁신'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정부에서는 올해 '디지털 사회 혁신 공모 사업(가칭 공상e몽)'을 추진한다. 주민 주도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지역 현안을 발굴·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골자다. 지역 주민들이 ICT 활동가와 사업자, 지자체와 함께 '스스로해결단'을 구성해 지역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아 실행하면, 정부에서 사업비를 지원한다.

#7. 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압박 거세진다

기업 ESG 수준에 따라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수준에 대한 전 세계 정부, 투자자, 소비자들의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중국은 1월 1일부터 환경오염 유발 기업에 환경보호세를 부과하고, 아랍에미리트연합 정부는 2017년 6월부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비즈니스 어젠다에 포함시키는 것을 의무화했다. 인도는 3년 평균 순이익의 2%를 CSR 활동에 사용하지 않은 187개 기업에 형사처벌을 내렸다. 투자자들도 기업의 ESG 수준에 따라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HSBC는 저탄소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동시에 석탄 발전에 대한 투자 중단 계획을 밝혔고, 노르웨이연기금 운영자들은 약 370억달러(40조6500억원) 상당의 석유 및 가스 투자 지분을 매각할 것을 권고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있다. JP모건은 향후 8년간 청정에너지와 지속 가능 경영 프로젝트를 위해 2000억달러를 투자하며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역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통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주주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ESG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관리 및 평가하고, 개선해나가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추세다.

#8. 넓어지는 글로벌 '환경지도' 한국도 동참?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도 친환경 경영 요구에 나서고 있다. 애플은 협력업체들에 재생 가능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 11월 독일 전기전자 기업 지멘스는 전 세계 화석연료 부문 근로자 6900명을 감원키로 했다. 지멘스의 이 같은 조치는 석탄과 원자력에 의존하는 전력 생산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에너지정책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내 2위 무역 상대국인 중국은 환경 규제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과거 중국 정부는 오염 물질 배출 기업에 사후 관리 방식으로 부과금을 부여했지만, 앞으로는 대기와 수질오염 물질, 고체 폐기물 배출, 소음 유발 기업을 대상으로 환경보호세를 부과한다. 또한, 오염 물질 배출 총량 지표를 초과하는 기업은 환경영향평가서 발급이 중단된다. 임대웅 에코엔파트너스 대표는 "중국 정부는 앞으로 환경 인프라 조성에 약 2경원의 민관 자금을 투입하고 세계적 투자기관들이 ESG 기반의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환경 보호 정책과 친환경 경영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김동연 부총리가 공공기관 혁신을 강조하는 모습.

#9. '사회적 가치' 봇물… 기업의 책임경영 도마 위로

공공기관 경영 평가 항목에 '사회적 가치' 배점이 대폭 향상되면서 기업의 책임 경영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대다수 공기업은 사회적 가치 자문단을 구성해 로드맵 수립에 속도를 내고, 전담 조직이나 TF를 구성했다. 민간 기업 역시 기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전략 재정비에 들어갔다. 사회적 가치의 측정 및 평가는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논의돼온 이슈다. 영국은 2012년 '사회적가치법'을 제정해 정부의 공공조달 부문에서 사회적 가치를 적극 고려하도록 했고, 미국은 2009년 사회혁신청(Office of Social Innovation)을 설치하고 5억달러 규모의 사회혁신기금을 조성해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과 사회문제 해결을 전폭 지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가치를 새로운 개념이나 유행어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이 기존에 해오던 인권·노동·반부패·품질 경영·윤리 경영·상생 등 사회적 책임(CSR)을 체계적으로 다듬고, 이를 비즈니스 전반으로 연결 및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이에 기업 내 사회적 가치 및 사회적 책임을 통합 관리하고 평가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으로 나눔 사각지대에 몰린 이들이 있다.

#10. 2018년 나눔 사각지대 '주목'

공익섹터 전문가들은 올해 주목해야 하는 나눔 사각지대로 ▲미혼모 ▲소년원 출소 청소년·수감자 자녀 등 사회적 소수자 ▲노인 안전과 우울증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을 지목했다. 장용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탈북자, 미혼모, 불법 체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지원은 '지원 대상에 대한 거부감과 편견'으로 나눔의 범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나눔 사각지대에 도움의 손길이 모일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정부, 기업, 제3섹터 등 '협력적 지원'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각 대상에 대한 개별적 지원이 어려울 경우에는 '다문화 외국인과 탈북민'에 대한 종합 지원, '장애인 여성' 지원 등 약자 카테고리를 여럿 망라하는 대상에 대한 지원 체계를 만들어 관심과 지원 폭을 넓히는 전략도 좋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