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 사이에 있는 '페장(Faisans)'이라는 섬이 있다. 우리말로 '꿩섬'이라는 뜻으로, 면적 6820㎡(약 2060평)에 길이 200m, 폭 40m 정도밖에 안 된다. 이베리아반도의 서쪽 끝 부분에 있는 이 섬은 두 나라 사이를 흐르는 비다소아강 중간에 있다. 프랑스령(領)인 이 섬이 2월부터는 스페인 영토가 된다. 스페인이 주권(sovereignty)을 넘겨받지만 6개월 뒤인 8월 1일엔 다시 프랑스에 넘겨준다. 두 나라는 6개월마다 이렇게 주권을 주고받는 일을 360년 가까이 거듭하고 있다.

수풀만 우거진 이 작은 무인도를 놓고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시작은 유럽이 가톨릭과 개신교 국가들로 갈려 싸움을 벌였던 '30년전쟁'(1618~1648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쟁 중에 두 나라는 상대의 내정(內政)에 슬쩍 개입했다. 스페인이 1620년대 네덜란드 개신교 측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자 프랑스는 은밀히 스페인 카탈루냐의 반란을 지원했다. 작년 10월 자체 주민투표로 '독립'을 선언했던 그 카탈루냐다. 그러자 스페인은 당시 미성년자였던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왕정(王政)에 반발해 일어난 내란인 '프롱드의 난'을 지원했고, 두 나라는 1635년부터 24년간 영토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을 끝내는 두 나라 협상이 석 달간 진행된 곳이 바로 이 섬이었다. 이 섬은 당시에도 '중립적인 영토'로 간주됐다. 두 나라 협상단은 양쪽에서 나무다리를 놓아 건너왔고, 1658년 11월 7일 이곳에서 국경선을 정리하는 '피레네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스페인 펠리페 4세의 딸 마리아 테레사와 혼인함으로써 '봉인'됐다. 이보다 한 세대 전인 1615년에도 프랑스의 루이 13세와 스페인의 펠리페 4세는 각각 여동생 이사벨과 안 도트리슈를 상대국의 '왕비'로 교환했다. 이때 두 왕이 '동시에' 자신의 신부 얼굴을 처음 본 곳도 바로 양국 간 국경선에 놓인 이 섬이었다. 피레네 조약의 다른 이슈는 이 섬의 관할권. 두 나라는 이때부터 6개월마다 주권을 교대하기로 했다.

'페장'처럼 두 나라 이상이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콘도미니엄(condominium)'이라고 한다. 독일과 룩셈부르크 사이 모젤강과 지류를 두 나라가 공동 주권을 행사하는 예도 있다. 페장은 현존하는 '콘도미니엄' 중 가장 오래됐다.

지금 이 섬엔 1659년의 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기념비만 있을 뿐 당시 흔적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수 세기 동안 피레네산맥의 눈이 녹아내린 물이 유입되면서 섬 자체가 계속 유실되고 있다. 하지만 양국 정부는 섬의 보호에는 관심이 없다. 두 나라는 한때 이 섬에 6개월마다 국기를 바꿔 게양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포기했다. 두 나라 국경 지역에 사는 바스크족(族) 분리주의자들이 몰래 자신들의 깃발을 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