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계 美 이민 1세대 출신…인턴에서 디렉터로
콧대 높은 명품, 다양성과 길거리 감성 변화 시도

루이비통 남성복 디렉터로 임명된 버질 아블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이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버질 아블로(38)를 발탁했다. 흑인 디자이너가 럭셔리 의류 업계의 디렉터로 임명된 것은 이례적으로, 이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역사상 처음이다. 버질 아블로는 오는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남성복 패션위크에서 루이비통 디자이너로서 처음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미국 이민 1세대인 아블로는 1980년 미국 일리노이주 락포드에서 태어났다. 건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건축가 렘 쿨하스와 프라다의 협업을 보고 패션에 눈떴다. 이후 할리우드 스타 카니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활약했고, 2009에는 카니예 웨스트와 펜디에서 6개월간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2012년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론칭한 그는 2013년 오프-화이트(Off-White)를 선보였다. 럭셔리 스트리트 브랜드를 지향하는 오프화이트는 고급스럽고 위트있는 스트리트웨어로 주목을 받았다. 버질 아블로는 2015년 LVMH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해엔 영국 패션 어워드 어반 럭스 상을 받았다.

버질 아블로와 루이비통의 만남은 패션계의 주류로 부상한 스트리트 패션을 적극 수용하는 명품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임 루이비통 남성복 디렉터였던 킴 존스는 매출 부진의 고육책으로 지난해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킴 존스는 “이제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가 사라졌다”며 슈프림과의 협업 이유를 밝혔다.

버질 아블로는 지미추의 스틸레토 힐을 PVC와 결합하거나(왼쪽), 테일러드 재킷을 로고가 들어간 네온 허리띠로 묶는 방식으로 하이엔드 스트리트 패션을 표현한다.

흑인으로서 콧대 높은 명품 업계에 입성한 것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춘 패션계의 최신 흐름으로 보인다. 현재 유럽 럭셔리 패션 하우스에서 흑인 디렉터는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인과 버질 아블로가 유일하다.

루이비통의 최고 경영자(CEO) 마이클 버크(Michael Burke) 회장은 과거 버질 아블로와 카니예 웨스트가 펜디에서 인턴십을 할 때 펜디의 CEO로 있던 인연이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월급으로 500달러를 줬다”고 회상하며 “지금의 아블로는 클래식과 모던을 잇는 다리와 같은 존재”라고 평한 바 있다.

이번 인사에 대해 마이클 버크는 “버질 아블로의 타고난 창의성과 과감한 접근방식은 그를 패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중문화계의 중요한 인물로 거듭나게 했다. 명품과 장인정신에 대한 그의 감성이 루이비통 남성 컬렉션을 이끌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질 아블로는 “루이비통 남성복에서 중책을 맡게 돼 영광이다. 루이비통 하우스의 전통과 창의적 진정성이 영감 삼아 현시대에 맞는 작품을 그려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