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김경필 특파원

'젊은 지역'으로 꼽히는 동남아시아가 인구 고령화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보건부는 수십 년 동안 계속돼온 산아 제한 정책인 '1가구 2자녀' 정책을 비롯한 인구 정책의 전면적인 수정 준비에 착수했다. 곧 닥쳐올 인구 고령화에 대비해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간 베트남은 공산당원·공공부문 종사자가 3명 이상의 자녀를 가질 경우 인사·승진 등에 불이익을 줬으나, 올해 안으로 정책이 정반대로 전환될 전망이다.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도 정년퇴직 연령을 남성은 현행 60세에서 62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0세로 각각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령화로 연금 수급 대상이 급증해 연금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면 연기금이 5년 뒤인 2023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고 2034년에는 고갈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도 현행 60세인 은퇴 연령을 65세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 4차례에 걸쳐 공공·민간 부문의 은퇴 연령을 55세에서 60세로 조정했으나 60세 이상 인구가 이미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하고 2050년까지 23.6%로 늘어나 연기금과 민간 연금보험이 모두 버틸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자 두 손을 들었다. 또 이미 1명대로 떨어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평균 자녀 수)을 끌어올리기 위해 출산 시마다 현금을 지급하는 '베이비 보너스'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동남아

오늘날의 동남아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지역이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6억4878만명에 달한 동남아 전체 인구의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나이 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선 사람의 나이)은 28.8세에 불과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인 3억2439만명이 나이가 28.8세도 안 된 어린이·젊은이들이라는 이야기다. 지난해 한국인 5145만명의 중위연령이 42.0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동남아가 얼마나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지역인지 알 수 있다.

태국 방콕에서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고 있다. UN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태국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60세 이상 고령층이 차지할 전망이다.

이런 동남아 인구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인구 고령화는 짧게는 한 세대, 길게는 네 세대 이상의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다. 프랑스는 1864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를 넘어서서 세계 최초로 '고령화 사회'가 됐다. 그러나 프랑스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어서는 '고령 사회'로 진입한 것은 그로부터 115년이 지난 1979년의 일이었다. 같은 일이 미국에서는 69년, 러시아에서는 50년, 영국에서는 45년에 걸쳐 일어났다. 하지만 동남아는 너무 빠른 고령화 속도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일본·한국에 필적하는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까지 일본은 24년, 한국은 17년이 걸렸는데, 세계은행에 따르면 같은 일이 싱가포르·미얀마·캄보디아·동티모르에서는 25년,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라오스에서는 20년 만에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노인 인구가 총인구의 7%를 넘어선 베트남은 15년 만에 고령 사회로 접어들어 한국보다도 빠르게 늙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예외는 출산율이 2.9명대를 기록하고 있는 필리핀으로, 약 35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의 고령화 속도가 이렇게 빠른 것은 기대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반면 출산율은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동남아 국가 사람들은 영양 상태와 보건의료 환경 개선, 경제성장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 선진국 사람들만큼 오래 산다. 2015년 현재 싱가포르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2.34세로 일본인(83.27세) 다음이고 한국인(81.27세)보다도 길다. 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 기대수명이 74~76세에 달해, 미국인(78.88세)과 비슷하게 장수한다. 반대로 출산율은 빠르게 낮아져, 1980년 4.81명에 달했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2.33명으로 37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31년이면 인구대체 수준인 2.10명을 밑돌고, 2050년이면 2명 이하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10여년이 골든 타임

동남아는 그동안 경제성장에서 '인구배당효과'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인구배당효과는 출산율이 높았던 시절 대거 태어난 젊은 인구가 대부분 살아남아 도시로 모여들어 경제활동을 하면서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효과이다. 이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만큼 다산(多産)하지는 않으면서 형제자매는 많아서, 각 사람이 져야 할 부모·자녀 부양 부담이 적다. 이들이 여윳돈을 저축하거나 투자하게 되면서 경제성장이 가속된다. 전문가들은 한때 오늘날의 동남아와 비슷한 인구구조를 보였던 동아시아에서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이뤄진 경제성장의 3분의 1가량은 인구배당효과로 인한 것이었고, 동남아도 2000년대 이래 비슷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2006년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가 나머지 피부양 인구의 2배를 넘는 '황금 인구 구조'에 진입한 이래 매년 5~7%대의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의 인구배당효과는 2040년 무렵부터는 '인구 폭탄'으로 바뀔 전망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노인이 급증하고, 이 세대가 자녀를 적게 낳은 탓에 줄어든 후속세대는 과거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노인 인구를 부양하게 된다.

선진국들은 그동안 쌓아놓은 자산과 발전된 사회보장제도를 가진 상태에서 고령화에 대응해 충격이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를 제외한 동남아 국가들은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2016년 현재 동남아에서 싱가포르·브루나이 다음으로 소득이 가장 높은 말레이시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508달러, 그다음인 태국이 5910달러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가들은 4000달러도 되지 않는 저소득 국가들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동남아 각국이 인구 고령화에 대비할 '골든 타임'이라고 지적한다. 산아제한 일변도였던 인구 정책을 수정하고 퇴직 연령을 조정하며 연기금과 조세 제도를 개혁하는 일을 10여년 안에 완수하는 한편, 경제를 효율화해 노동력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정책 결정이 필요하겠지만 고령화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