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케이시 라티그씨는 2013년부터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그는 “탈북자를 돕는 일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고 했다.

매달 마지막 주, 탈북자 수십명이 서울 마포구 한 사무실로 모인다. 사무실 문 앞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이들의 나이는 다양하지만 목적은 같다. 영어 학습이다.

탈북자에게 영어는 생존 문제이면서 동시에 어려움을 겪는 과제다. 국내에선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알게 모르게 영어에 노출되며 산다. 실제 쓰는 말 중에 외래어도 많다. 탈북자 입장에선 굉장히 생소하다. 통일부 조사 결과 탈북자들은 '외래어로 인한 의사소통'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TNKR을 운영하는 미국인 케이시 라티그씨는 2013년부터 탈북자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탈북자 사이에서 '고마운 은인'으로 불린다.

탈북자에게 영어는 생존 문제

마포구 신수동의 TNKR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탈북자들이 전해온 감사 편지가 가득했다. 이날 사무실을 찾은 사람 외에도 탈북자 100여 명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다른 교육 기관도 있는데.

"일부 탈북자는 자비로 학원에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기초가 없다 보니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경제적인 부분도 문제가 된다. 독학은 더 어렵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더 잘해야 다른 한국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어떤 식으로 가르치나.

"전적으로 탈북자들이 주도권을 쥔 수업이다. 영어를 가르쳐주는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수십명 있다. 탈북자들은 외국인 선생님을 적게는 1명부터 많게는 10명 이상 신청할 수 있다. 자신이 공부할 의지만 있으면 시간이 맞는 선생님과 계속 만나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한 번 만나면 최소 두 시간 이상 공부를 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

"탈북자 사회에 우리 단체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다. 탈북자 중에선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거나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에게 교육을 받고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간 사례도 있다. 탈북자들이 사회에 정착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도 도움을 주는 일이다."

이곳에서 영어를 배운 박연미씨는 2014년 BBC가 선정한 '세계 100대 여성'에 뽑히기도 했다. 박씨는 그해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북한 장마당 세대의 희망'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 북한의 식량 배급망이 무너진 1990년 이후 태어난 북한 장마당 세대의 특성을 소개하기도 했다.

―박연미씨도 이곳에서 영어를 배웠나.

"연미는 가르친 학생 중에서 가장 성실했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의 전회를 20번씩 반복해서 보면서 공부하고 선생님에게 묻기를 반복했다. 하루에 9시간씩 영어를 공부했다."

―TNKR을 거쳐 간 이들은 몇 명인가.

"지난 4년간 400여 명의 탈북자가 영어 교육을 받았다. 이 기간 영어를 가르쳐주는 자원봉사자만 600여 명이 참여했다. 항상 대기 명단에 교육받기를 원하는 탈북자들이 100여 명 남짓 있다. 이들을 하루빨리 가르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하버드대 출신 흑인 선생님

라티그씨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1992년이다. 그해 미국 LA에선 폭동이 일어났다. 한인 사회는 주요 공격 대상이 되며 발칵 뒤집혔다. 흑인들에겐 한인이, 한인들에겐 흑인이 증오의 대상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라티그씨는 LA 폭동 일주일 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그날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 중 유일한 흑인이었다.

―하버드 졸업생이라면 더 좋은 기회도 많았을 텐데.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카토(CATO) 인스티튜트'라는 싱크탱크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교육 정책 전문가로 활동했던 덕에, 높은 연봉으로 유혹하는 기관이나 연구소도 있었다."

―한국에선 좋은 대학을 나온 뒤 큰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긴다.

"미국에도 그런 문화가 있다. 큰 꿈, 큰 기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게 큰 역량의 일감을 주는 곳이 더 좋았다. 커다란 미국 싱크탱크에선 한쪽 일만 해야 했지만, 여기 작은 한국 단체에선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행복감은 지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다."

―탈북자를 돕는 활동은 어떻게 시작했나.

"2012년 2월 중국에서 탈북민들이 강제 북송된 사건에 충격을 받아, 관련 집회에 몇 번 참가했다. 말도 안 되는 비윤리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민감하지 않았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의 삶의 무게를 너무 쉽게 대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탈북자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게 전부다."

―단체 운영이 쉽지 않을 텐데.

"후원금에 기대 운영한다. 후원자 대부분은 외국인들이다. 미국, 유럽 등에서 우리 단체의 활동 소식을 듣고 취지에 공감한다며 후원금을 보내준다. 자원봉사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들도 돈을 낸다. 돈을 내면서 탈북자들을 교육하는 셈이다. 한국인 지원은 거의 없는 편이다."

―국내 지원이 적은 이유가 있나.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적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그랬지만 요즘도 많이 놀란다."

이 단체를 운영하기 위해선 시설 임대료나 교재비 등 최소 수천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라티그씨와 운영진은 사비까지 들여 활동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이들이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전화 (02)6929-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