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사이트 추천 번호로 로또 1등 당첨
운영자 "약속한 당첨금 10% 내라" 소송
법원 "약관 설명 부실해 이행 의무없어"

“1·2등 당첨시 당첨금의 10%를 기부해야 한다”

로또 번호를 무료로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약관에 이런 문구가 담겼다면 이용자가 실제로 로또에 당첨됐을 때 기부금을 내야할까. 당첨자가 약관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굳이 돈을 건넬 필요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A씨는 작년 4월 로또 번호를 추천해주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작위로 번호 6개를 받았다. 1등 당첨번호였다. A씨가 19억원을 받자 사이트 운영자 B씨는 약관에 따라 기부금 10%를 내야한다며 소송을 냈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은 B씨가 A씨를 상대로 낸 약정금 소송에서 “A씨가 사이트에 가입할 때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지난 4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지난 2017년 1월 시민들이 서울의 한 복권 판매점에서 로또 복권을 구입하고 있다.

B씨는 소송에서 “사이트 서비스를 이용해 당첨이 됐으니 A씨는 이용 수수료 명목으로 기부금을 낼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이트 약관에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무료지만, 1·2등 당첨시 당첨금의 10%(세전)을 기부할 의무가 있다”고 적힌 문구가 그 근거다. B씨의 사이트는 유료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B씨는 또 로또 당첨이 천문학적인 확률이기에 당첨금의 10%를 지급한다는 약관 규정이 있다하더라도 웹사이트 회원 가입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므로 이는 약관법에 따른 설명 의무 대상이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반면 A씨는 ‘당첨금의 10%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관은 형평에 크게 어긋나 통상 기대할 수 없는 조건이어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만큼 무효라고 주장했다. 약관법상 △고객에게 불리한 조항 △고객이 계약의 거래형태 등 모든 사정에 비춰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에 따르는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은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해 무효다.

B씨 측은 천문학적 확률을 뚫은 로또 당첨 번호를 제공한 것인데 수수료 10%를 물린다고 해서 사용자들이 회원 가입을 주저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약관법상 설명의무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다. 7만명에 달하는 회원 가운데 설명 의무를 문제삼은 경우가 없던 점, 회원 가입시 사전에 약관 내용을 확인하고 동의하도록 팝업 배너를 띄워 알린 점 등도 유리한 사정으로 꼽았다.

그러나 A씨는 “약관에 적어놓기만 했을 뿐, 이용자가 인지하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과학적, 통계적 근거도 없이 임의로 선정된 숫자 조합을 제공하는 서비스만으로 거액의 수수료를 취득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대법원 판례는 “사회 통념에 비춰 고객이 계약 체결의 여부나 대가를 결정하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은 설명의무 대상”으로 본다. 재판부는 A씨가 약관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있었는지 여부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B씨 사이트의 무료회원 가입 초기화면에 ‘이용약관’,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일부를 노출한 채 고객 동의를 확인하는 칸이 마련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세부내용을 읽지 않고 동의 표시를 한 경우에도 가입 절차가 그대로 진행된다는 점, 문제의 약관을 다룬 팝업 배너는 따로 설정돼 있지 않았고, 약관도 고객이 주의해야할 의무 등을 따로 표시하지 않은 채 단순 나열하는 형식이라는 점도 인정하고 이 부분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웹사이트는 무료회원가입 시 이용약관과 개인정보에 관한 안내에 동의하지 않으면 신청 절차가 진행되지 않지만, 이는 약관법상 명시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재판부는 “적어도 스크롤바를 이동해 대화상자 내에 있는 약관을 반드시 읽도록 하게 만들었거나 팝업 배너나 음성 프로그램, 중요사항을 게시한 화면을 다시 표시하는 방법을 통하도록 해야했으나 B씨는 웹사이트 무료회원 가입시 설명의무를 이행하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기부금을 내라는 약관 규정은 사용자(A씨)의 의무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