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17일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를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김 위원장은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무너진 한국당의 임시 지도부를 이끌게 된다. 한국당은 탄핵과 대선 패배에 이어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하고도 한 달이 넘도록 친박(親朴)·비박(非朴)으로 나뉘어 네 탓 싸움만 벌였다. 그 와중에 중진(重鎭) 의원들은 그나마 남은 당내 이권을 움켜쥐려고 낯 뜨거운 삿대질을 벌여 국민이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도 42명이나 되는 초선 의원들은 변변한 쇄신 목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수락 연설에서 "잘못된 계파 논쟁, 진영 논리와 싸우다가 죽어서 거름이 되면 큰 영광"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 위원장은 당시 열린우리당이 친노(親盧)·비노(非盧) 싸움으로 날을 새우다 소멸했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을 것이다. 지금 한국당의 친박·비박 싸움은 그보다 훨씬 더 고질적이고 중한 병이다. 당의 바닥 자체가 퇴행화돼 있고 그 위에서 지독한 의원 자리 이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적당히 분칠해서 눈가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팔다리를 잘라내는 전면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강한 저항이 있을 테지만 넘어서지 못하면 국민에게 또 외면받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의 한국당'과 전쟁을 한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한국당 전면 쇄신은 밖에서 온 김 위원장의 힘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친박·비박이 김 위원장이 하려는 일마다 계파적 이해관계를 들이대면 김병준 비대위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미 비관론이 나오고도 있다.

한국당의 뿌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게 전통 있는 정당을 불과 몇 년 사이에 지금의 풍비박산으로 만든 책임으로부터 한국당 의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국민은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한국당 의원들의 '자기희생'이 엿보이면 다시 눈길을 줄 것이고, 아니라면 2020년 총선이 또 한 번의 심판의 장(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