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파운드(약 22조원)에 달하는 원전(原電) 영국 수출이 무산될 위기라고 한다.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에 2025년까지 원전 3기를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한국전력이 작년 12월 중국 업체를 제치고 우선협상권을 따냈지만, 협상이 틀어지면서 지난달 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도 잃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두 번째 원전 수출을 기대했는데 제동이 걸렸다. 표면적으로는 도시바와 한국전력의 계약이지만 영국 정부의 입장이 중요했다. 영국 정부는 전기 요금을 낮추려고 하고, 한전은 가급적 높게 받아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아직은 밀고 당기는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협상 과정으로만 보기엔 석연치 않은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현지 언론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신임 한전 사장 임명 등으로 불확실성이 조성됐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뜻하는 것이다.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계산이라고 하더라도 상대에게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다. 무어사이드 원전은 사업자가 30년 넘게 운영하게 된다. 자국에서 원전 폐쇄하면서 남의 나라 원전 30년 유지·보수해준다는 약속을 믿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세상에 자기 나라에선 위험하니까 만들지 말라고 한 물건을 다른 나라에는 팔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즈니스를 떠나 윤리의 문제다. 한국 정부가 원전을 놓고 하는 일이 딱 그렇다. 탈원전을 정치 오기로 밀어붙이는 정권이 앞으로 비판을 모면하려 영국 원전을 덤핑으로 수주해 '수출했다'고 선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탈원전에 따른 한전의 적자를 연료 세율 인하로 눈가림하려 하고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고 끝까지 밀고 간다.

탈원전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는 수출마저 무산되면 고사(枯死) 위기에 몰리게 될 수도 있다. 신고리 5·6호기 납품이 끝나는 2021년 이후 일감이 사라지면 부품업체 등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우리 원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독자 모델 원전 수출국은 우리와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여섯 나라뿐이다. 원자력은 '두뇌에서 캐는 에너지'라고 한다. 부존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5년 정권이 엉터리 이념에 빠져 이걸 포기한다고 한다.

영국은 1956년 첫 상업 운전 콜더홀 원전을 건설했던 나라다. 그런데 1995년 이후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원전 산업이 몰락, 처지가 뒤바뀌게 됐다. 우리도 이미 원자력을 공부하는 학생의 씨가 마를 조짐이다. 이 과오를 나중에 누가 감당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