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논설위원

올 상반기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발부(일부 기각 포함) 건수가 11만8248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1~6월)보다 20% 가까이 늘어 사상 최고치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수사기관들이 매일 650차례꼴로 누군가의 사무실과 집, 휴대전화, 금융계좌를 뒤진다는 뜻이다. '압수수색 공화국이 됐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고검장을 지낸 변호사에게 숫자를 일러줬더니 "정말 그렇게 많으냐"며 깜짝 놀란다. 오죽하면 30년 경력 수사 전문가까지 이런 반응을 보일까 싶다.

수사·재판 환경이 진술 위주에서 물증 위주로 바뀌면서 압수수색 증가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긴 하다. 수사기관 입장에선 압수수색만큼 효율적인 증거 확보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휴대폰·PC 등 IT 기기 이용 내역에는 사용자의 머릿속 생각까지 담겨 있다고 한다. 수사기관이 '보물'로 여겨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상황과 별개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압수수색이 너무 많다. 인권침해, 영업방해 피해가 늘고, 사건 왜곡 또한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음하는 기업들

검찰은 지난 20일 올 들어 10번째 '삼성 압수수색'을 했다. '노조 와해 의혹' 수사팀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자료를 쓸어갔다. 그간 수원의 삼성전자 본사 4차례,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수원)는 3차례, 서울 서초사옥은 2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애초 검찰이 올 2월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수사를 하다 우연히 압수한 문건으로 시작한 별건 수사다. 삼성 관계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압수수색 관련은 '입장이 없다'는 게 입장"이라고 했다. 이럴 땐 침묵이 최상의 대응이다. 그러나 불만이 없을 순 없다. "문서나 이메일로 내부 보고를 할 때도 괜스레 자꾸 신경 쓰게 돼요. 혹시 검찰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지나 않을지…."

다른 기업 사정도 다르지 않다. 최근 몇 년 새 검경 압수수색을 피한 대기업은 손꼽을 정도다. 공정위 퇴직자 취업 강요 사건 때도 10여 개 기업이 압수수색 당했다. '자리 내놓으라'는 공정위 등쌀에 시달리고 그걸 뿌리치지 못했다고 검찰에 또 시달렸다. 항의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기업들도 안다. 재계 관계자는 "이젠 익숙해져 그러려니 한다. 폭풍우가 지나가기만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일단 털고, 아니다 싶으면 별건 수색

판사 출신 황정근 변호사는 "요즘은 혐의가 있어서 압수수색하는 게 아니라 압수수색해서 혐의를 찾는다는 말까지 있다"고 했다. 면밀한 내사(內査)를 거쳐 혐의를 특정한 뒤 압수수색을 해야 하는데 '일단 털고' '나올 때까지 턴다'는 것이다. 재작년 롯데비리 수사가 그런 사례다. 군사작전하듯 200명을 동원해 압수수색을 벌인 검찰은 비밀금고 속 비자금을 찾았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런데 그 돈은 총수가 월급·배당금을 쌓아 둔 거였다. 그러자 '나올 때까지 털기'가 시작됐다. 10여 차례 압수수색이 있었다. 수사 물줄기는 비자금이 아니라 '탈세'로 바뀌었다.

지난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압수수색은 '싹쓸이' 압수수색 사례다. 압수물이 너무 많아 검찰청 복도에 들어찰 정도였다. 그런데 수사에 불필요한 자료, 전문지식이 있어야 해독 가능한 자료도 많았다. 검찰 내에서 "알아보지도 못하는 자료를 왜 가져왔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몇 해 전엔 선거 예비 후보가 돈 봉투를 돌렸다며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섰다가 출판기념회 초대장 돌린 걸로 드러나 망신당한 적도 있다. 한 검찰 원로는 "전반적인 수사실력 저하도 압수수색 남발의 원인"이라고 했다.

◇로펌도 압수수색… 어디든 턴다

법정에서 검찰과 대척점에 서는 게 로펌들이다. 그 로펌도 압수수색 당한다. 몇 해 전 수사받던 대기업 관련 소송을 수임했던 로펌을 검찰이 턴 일로 변호사들이 들썩였다. "검찰이 선을 넘었다" "검찰 무서워 변론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검찰은 '수사를 위해 불가피했다'며 꿈쩍도 안 했다. 범죄 피의자라면 압수수색에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단순 참고인이나 사건 관련자까지 무차별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문제다. 검찰이 최근 '재판거래' 수사를 한다면서 민감한 외교문서가 가득한 외교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압수수색 쇼

압수수색은 기밀 유지가 관건이다. 정보가 새면 증거를 없앨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전까지 수사관들에게도 비밀에 부친다. 하지만 관세청의 한진 일가 압수수색은 그 반대였다. 관세청은 밀수품을 찾는다며 지난 4월 말부터 한 달간 5차례나 한진 일가 관련 압수수색을 했다. 엿새에 한 번꼴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취재 경쟁이 붙었다. 관세청 트럭에 실린 압수물이 뭔지 세세히 분석하는 보도까지 있었다. 압수수색 전 관세청 관계자가 일부 기자에게 '취재협조' 요청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수사 대상에게 창피를 주려는 게 압수수색의 진짜 목적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압수수색 준칙은 사라지고

수사기관이 지켜야 하는 '인권보호수사준칙'이 있다. 2002년 제정된 법무부 훈령이다. 그 준칙의 압수수색편에 이렇게 나와 있다. '사생활과 명예를 최대한 보장하라' '사무실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 '기업에 필요한 서류 등은 신속히 돌려주라'. 지난해 수사받다 자살한 변창훈 검사 유족이 가장 분노했던 건 자녀들 등교 전인 이른 아침에 수사관들이 집에 들이닥쳤다는 사실이었다. 검사 출신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는 "인격을 모독하는 압수수색은 악습인데 여전히 답습되고 있다. 압수수색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경찰 압수수색 10년새 2배… 정권 바뀐 해마다 확 늘어

8만7000건→18만7000건 "정권초엔 군기잡기 수사 확대"
경찰 "경제 커지며 계좌 급증, 개인정보 확보 위해선 불가피"

압수수색 급증을 수사 주체별로 보면 경찰 압수수색이 크게 늘어난 것이 주원인이다. 대검 집계에 따르면 경찰(특사경 포함)은 2008년 8만7000여건 압수수색을 했으나 지난해엔 18만7000여건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경찰은 형사사건 98~99%의 초동수사를 담당한다. 수사 인력도 2만8000명가량에 달한다. 경찰 인력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경찰청 강태영 계장은 "경제 규모가 증가하면서 계좌 수도 급증하고 있고 과거엔 공문(公文)이나 협조 요청으로 가능했던 개인 정보 확보를 대부분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하게 된 것이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검찰과 수사권 조정 주도권 다툼을 해 온 경찰이 인지(認知)수사 비중을 높여온 것도 원인이 아니냐는 분석도 하고 있다. 경찰 내에선 광역수사대와 지능범죄수사대 등의 실적 경쟁이 치열하다고 알려져 있다.

새 정권 첫해 압수수색이 급증하는 패턴도 발견된다. 2012년 12만500여건이던 압수수색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18만700여건으로 뛰어올랐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엔 20만건을 넘어 다시 최고치를 경신했고, 올해는 더 많아질 전망이다. 이명박 정권 첫해인 2008년에도 10만건에 육박해 7만4000건 정도이던 전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한 현직 검사장은 "아무래도 정권 초 군기 잡기 사정(司正) 작업이 시작되면 수사기관들이 수사 총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엔 '법질서 강조' 흐름이 있었고, 박근혜 정부 첫해엔 '4대악 척결', 현 정권에선 '적폐 청산 드라이브'가 계속되고 있다.

영장 발부율 99%… 법원이 직접 당해보면 압수수색 남발 바뀔까

최근 '재판 거래' 의혹 수사에서 영장판사가 "주거의 평온을 깰 만큼 소명이 안 됐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해 논란이 됐다. 비판하는 쪽에선 '듣도 보도 못한 기각 사유'라고 했다.

압수수색은 신체 자유를 직접 제약하는 구속영장보다 발부 요건이 덜 엄격한 것이 사실이다. 형사소송법에는 '(수사 중인) 피고사건과 관계있다고 인정될 때'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주거의 평온'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압수수색은 주거의 평온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건 대법원 판례의 오랜 입장이고,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준칙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황정근 변호사는 "법원이 영장 발부 요건을 강화해 압수수색 남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압수수색은 폭증하는데 법원의 영장 전부 기각률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1% 안팎이다. 부분 기각이 다소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압수수색을 막는 조치는 아니어서 영장 99%는 법원 문턱을 통과한다고 보면 된다. 구속영장 기각률이 20% 안팎인 것과 대비된다. 이창현 교수는 "법원도 이번에 수사를 당하면서 뭔가 느끼는 게 있지 않겠나. 압수수색영장 발부 기준이 좀 엄격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