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이번 달 기준금리를 연 1.5%로 동결했다. 9개월째 동결이다. 지금 우리 금리는 미국보다 0.5%포인트 낮다. 미국 중앙은행이 연내 최소 한 차례 이상 금리를 더 올릴 예정이어서 금리 격차는 곧 0.75%포인트 이상 벌어진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자금 이탈을 막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경기(景氣)가 위축될까 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7월 기업 설비투자는 5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외환 위기 이후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경기동행지수도 4개월 연속 하락했다. 경기 하강기의 초입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전형적 증세다. 경기 하강기에 금리 인상은 독(毒)이다.

금융 시장을 감안하면 금리를 올리는 게 맞는다. 오랜 저금리 기조로 방만하게 풀린 부동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고 있다.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부동산 버블이 커지고 1500조원까지 부푼 가계 빚이 더욱 불어날 수 있다. 반면 실물 경제를 생각하면 인상은커녕 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할 판이다. 금리 인상과 인하 요인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하는 지경이다. 거시 경제 정책 운영에 근본적인 제약이 생긴 것이다. 이 제약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정부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호황기에나 쓸 수 있는 최저임금 급속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정책으로 안 그래도 취약하던 경기 회복세가 꺾여 버렸다.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는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금리 격차가 커져 외국인 자금이 이탈 조짐을 보이는 동시에 경기 하강이 시작되고 일자리 난이 심화될 수 있다. 미·중 무역 전쟁 본격화로 산업 타격도 예상된다. 온갖 악재가 도사리고 있는데 금리 인하 카드조차 쓸 수 없다면 큰일이다. 한국 경제는 한쪽 팔이 묶인 채 높은 파도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