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리스(Cashless·현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는 사회)추진협의회'.

지난달 9일 일본 도쿄에서 이런 이름의 새로운 민관 협의체가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주도로 발족한 캐시리스추진협의회는 현금 외 신용카드나 전자화폐 결제 비율을 오사카 엑스포가 열리는 2025년까지 4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궁극적으로는 '현금 외 결제 비율 80%' 달성이 목표다.

일본에서 이같이 비장한 협의체가 등장한 이유는 하나다. 현금 거래만을 고집하는 가게와 국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수도 도쿄에서조차 '○○페이' 같은 전자화폐는 물론 신용카드조차 받지 않는 '캐시 온리(only)' 매장이 많다. 일본 국민도 현금 결제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일본 경제산업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현금 외 결제 비율은 2015년 기준 18.4%로 한국(89.1%) 중국(60.0%) 영국(54.9%) 등보다 훨씬 낮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일본의 상황을 '캐시리스 후진국'이라고 지칭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현금 결제 문화가 국가 경제에 손해를 끼친다고 본다. 우선 외국인 관광객들이 '현금 결제 문화' 때문에 쓸 돈을 다 쓰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정책투자은행이 지난해 12개국 외국인 관광객 6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방일 외국인 여행자 의향 조사'에 따르면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았더라면 돈을 더 썼을 것"이라고 답한 외국인이 68%에 달했다.

경제산업성에선 현금 결제를 우선하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1조2000억엔(약 12조원)의 기회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현금 결제 문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은행들이 부담하는 현금 조달 비용 및 ATM 기기 관리 비용은 연간 2조엔(약 20조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쓰비시UFJ은행은 2023년까지 ATM 기기 20%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체국은행 역시 ATM 송금 수수료 무료 서비스를 현행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 여기에 현금만 받는 업장 대부분이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영세업자인 만큼 '캐시리스' 결제 방법을 받아들여 현금 결제 업무를 줄여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일본 정부가 '캐시리스 결제' 보급에 팔을 걷고 나서자 기업들은 각종 '○○페이'를 쏟아내고 있다. '라인 모바일'은 지난 6월 영세 상점의 '라인 페이' 결제 수수료를 3년 동안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3%가 넘는 수수료 때문에 카드 결제를 꺼리는 영세 상점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소프트뱅크도 곧 '수수료 0원' QR 코드 결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의 '캐시리스' 확대 정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현금주의'라고 불리는 일본 국민의 각별한 현금 사랑 때문이다. 한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가 지난 8월 발표한 '캐시리스 사회에 관한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200명 중 61%가 현금 결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현금을 선호하는 이들은 '현금 지불이 불편하지 않다'(61%) '신용카드를 쓰면 낭비한다'(36%) '카드 보안 문제가 신경 쓰인다'(26%)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의 치안과 은행 인프라가 좋아 현금 이용이 편리하다는 인식도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한국의 세액공제제도 등이 보완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연간 카드 이용액 일부를 공제해주는 등의 '당근'을 주지 않는 한 일본 국민의 현금주의 성향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