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너의 그 두 눈빛/ 빠져 버릴 거 같아/ 요즘 수영 배워".

최근 4년 만에 새 앨범을 낸 원맨밴드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이지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좀 더 다채로운 소리들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열면 십중팔구 이 닭살 돋는 노래가 배경음으로 흘렀다. 이지린(37)의 원맨 밴드 허밍어반스테레오가 부른 '하와이안 커플'이다. 당시 그가 만든 '샐러드 기념일' '베이비 러브' 등 애교 섞인 사랑 노래가 주로 광고 삽입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지린은 "내가 만든 곡처럼 실제 연애했다면 주변 친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최근 4년 만의 신보 'V'를 낼 때도 "살랑살랑 귀여운 음악에 대한 기대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간 요조, 최강희 등 일명 '허밍걸'들이 비음 섞어 부른 객원 보컬이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내 노래 비중을 늘리거나 센 보컬을 쓰면 '옛날 같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했다.

그럼에도 "매번 똑같은 것만 쓸 순 없다. 나이 들면 이혼, 출산 같은 주제의 '하와이안 황혼'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신보 첫 곡 'V'에서 "언제까지 사랑 노래를 쓸 수 있을까"라고 노래하고, 그간 많이 써왔던 전자음 대신 베이스와 기타 같은 악기를 주로 쓰며 다른 사운드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여자 좋아하는데/ 너도 여자 좋아하는구나/ 레인보우 배지를 달고서 너를 응원하며"처럼 사회적 소수를 노래한 곡도 담겼다. 변하지 않은 건 작·편곡부터 프로듀싱까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쳐서 작업하는 방식뿐이다.

이지린은 2004년 컴퓨터 작곡으로 시험 삼아 찍어낸 CD가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알려졌다. "고작 1년 독학해 10년 넘게 해먹으면 반칙 아니냐. 금방 그만둘 줄 알았다"고 했다. 특히 2012년 7년간 함께했던 '허밍걸' 이진화가 갑자기 심장병으로 숨졌을 땐 "너무 힘들어 아예 전직도 생각했다"고 했다. "보컬을 교체하는 것과 잃는다는 건 전혀 다른 의미더라고요." 일본 도쿄에 있던 친구의 공유 숙박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결국 음악이 가장 재밌다는 것만 깨달았다"고 했다.

이지린은 자신의 기획사 '왈츠소파'의 뜻이 "함께 소파에 앉아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박자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이어폰을 빼앗아 들었을 때 제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때 '너 음악 취향 좀 괜찮네'란 말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허밍어반스테레오는 10월 26~27일 서울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7년 만의 단독 공연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