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시의 핑안(平安)빌딩 116층 전망대에 올라서자 구름 아래로 선전과 홍콩이 보였다. 118층인 핑안빌딩은 높이 600m로 선전 최고이자 중국 2위, 세계 4위의 마천루다. 덩샤오핑이 1978년 12월 개혁·개방을 선언할 당시 선전은 3층을 넘어서는 건물이 없는 인구 3만의 극빈한 어촌이었다. 선전은 이제 100m 넘는 마천루만 1000곳을 거느린 인구 2000만의 거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인구 2000만 도시에 초고층 빌딩만 1000여개 -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는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시의 야경. 사진 속 가장 높은 빌딩은 높이 600m, 118층 규모로 세계 4위 마천루인 핑안(平安)빌딩이다. 1978년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이 막 시행될 무렵 선전은 3층을 넘는 건물이 없는 인구 3만의 작은 어촌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선전시는 높이 100m가 넘는 초고층 빌딩 1000여 채가 들어선 인구 2000만의 거대 경제 도시가 됐다.

핑안빌딩 북동쪽엔 난링(南嶺)촌이 있다. 40년 전엔 하룻밤에도 수십 명, 수백 명씩의 젊은이가 목숨을 걸고 선전강을 건너 홍콩으로 달아나던 마을이었다. 홍콩의 1인당 GDP가 난링촌의 100배가 넘던 시절이었다. 난링촌 주민들은 그러나 이제 40개 기업과 빌딩·쇼핑 센터·호텔이 들어선 마을 앞 산업단지의 대주주다. 1980년 중국 첫 경제특구가 선전에 들어서자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부지를 만들고 홍콩 등 외국계 자본을 유치해 공단을 조성한 덕분이었다.

중국 선전시 난링촌 주민들은 지난 5월 5억위안(약 825억원) 규모의 펀드를 출범시켰다. 펀드의 종잣돈은 주민들이 기존 공단에서 받는 1인당 한 해 15만위안(약 2500만원)의 배당 수익이다. 투자 대상은 5G 이동통신, 반도체, 인공지능과 생명과학 등 4차 산업 분야의 스타트업들. 장위뱌오 촌장은 "주민들을 이끌고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증시)상장 벨을 울리는 날을 꿈꾼다"고 했다. 난링촌의 도전은 값싼 제조 기지에서 이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도약을 꾀하는 중국 개혁·개방 1번지 선전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난링촌 같은 마을이 속출하면서 선전의 GDP는 홍콩을 추월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최근까지도 선전을 상징하는 곳은 화창베이(華强北)였다. 세계 최대 전자상가인 이곳은 '지구 상 어떤 제품도 베껴낸다'는 선전만의 제조 경쟁력을 상징했다. 그러나 선전의 현재를 알고 싶다면 이제 선난(深南)대도를 달려야 한다. 화창베이 서쪽에서 선전의 최고 부촌인 난산(南山)구를 가로지르는 길이 25.6㎞의 이 길을 따라 핑안보험, 자오상은행과 같은 선전 태생 금융기업들부터 텐센트, DJI와 각종 혁신 스타트업 등 4차 산업 벤처들이 선전에 혁신 DNA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선난대도가 지나는 지역에 있는 한 벤처타운 앞 잔디밭. 19일 오전 세계 1위 드론 메이커 DJI의 한 직원이 무협지 속 장풍 고수처럼 손바닥 하나로 드론을 이륙시켰다. 사람 눈높이로 떠오른 드론은 직원의 손바닥 움직임에 따라 상하좌우, 앞뒤로 움직였다. DJI가 새로 내놓은 이 제품은 '드론은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비결은 사물 인식. 주인이 탄 자전거도 드론에 미리 인식시켜 놓으면 자동으로 따라오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한 DJI가 물량뿐만 아니라 기술에서도 독보적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인 직원인 석지현 매니저는 "DJI의 경쟁자는 이제 DJI뿐"이라고 말했다. 혁신의 비결은 25% 룰이다. 아무리 직원이 늘어도 연구원 비율을 최소 25%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2006년 20명으로 시작해 직원이 1만2000명이 된 지금도 똑같다고 했다. 홍콩 과기대를 나온 37세 오너도 사무실에 침대를 갖다 놓고 평균 28세인 젊은 직원들과 경쟁한다. 석 매니저는 "선전은 아침에 디자인해서 오후에 테스트 모델을 만들 수 있고 인재들이 끊임없이 몰려오는 혁신의 최적 입지"라고 했다.

미국의 3D 프린터 벤처 볼테라도 바로 그 같은 '혁신 환경'을 따라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를 선전으로 옮겼다. 창업주이자 CEO인 알로이 알메이다는 "부품이라면 없는 게 없고, 미국에선 몇 주가 걸릴 일을 단 몇 시간, 며칠이면 끝낼 수 있는 제조업 기반은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전 세계 4000개 경제특구 중 최고 성공 모델"이라고 한 선전의 선순환 산업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은 인재다. 개혁·개방 초기 공장과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여공과 노동자들이 이민 1세대였다면, '선전 드림'을 좇아 온 고학력자들이 이민 2세대의 주력이다. 선전 주민 중 이들의 비중이 90%가 넘는다. 지난해에만 전국과 해외에서 55만명이 넘는 대졸 이상 젊은 인재가 몰려들었다. 32.5세였던 선전 인구 평균 나이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젊은 고학력자들이 몰리면서 선전은 창업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선전에서 신규 상업등기를 한 법인은 55만2000곳이었다. 하루 평균 1512곳꼴이다. 누적 309만4000곳으로, 시민 1000명당 상업 법인 261곳, 기업 151곳으로 중국 내에서 압도적 1위다. 선전은 인재 유치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인재 인증 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창업이든 취업이든 선전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대졸 이상 청년들에게 주거비를 지원하고, 선전 호적 보유자와 똑같은 혜택을 주는 제도다. 전공에 상관없이 학사는 1만5000위안(약 248만원), 석사는 2만5000위안(약 412만원), 박사는 3만5000위안(약 578만원)의 주거 보조금이 일시불로 지급된다. 창업자라면, 아이디어만 있다면 몸만 와도 될 정도다. 법인 등기부터 각종 등록 업무, 지식재산권 보호 업무까지 전 과정을 선전시 정부가 대행해준다.

하지만 선전의 혁신 모델은 아직도 약점이 있다. 기초·원천 기술의 부족이다. 선전시는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스카우트, 최근 모두 5곳에 혁신 연구실을 열었다. 또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이스라엘 텔아비브 등 해외 혁신 기지 7곳에 '선전 해외 혁신센터'를 열어 선진 기술을 배우고 인재를 유치하는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 '사흘마다 건물 1층을 더 올린다(三天一層樓)'는 구호는 '선전 속도'를 상징했다. 선전은 이제 하루 51건 특허를 출원한다. 구호는 '혁신엔 오직 1등만 있을 뿐 2등은 없다(創新只有第一, 沒有第二)'는 질적 속도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