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는 첨단 정보화에 따라 모바일화된 우리 사회가 어떤 취약점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 줬다. 가로·세로 2미터, 길이 150미터짜리 지하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로 중구·용산구·서대문구·마포구 일대와 은평구·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의 도시 기능 상당 부분이 멈춰 서버렸다. 이 지역에서는 KT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는 물론 카드 결제까지 중단됐다. 지하철 물품 보관함과 주차장 출입문 등 통신과 관련된 모든 시설이 작동을 멈추고, 심지어 일부 경찰서의 112 신고 시스템까지 단절됐다. 평일이었다면 금융 서비스가 올 스톱되는 등 더 큰 혼란이 일어날 뻔했다. 1994년 종로5가 지하 통신구 화재를 비롯해 여러 차례 똑같은 유형의 사고와 혼란을 겪었다. 그때마다 대책을 세운다고 했으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이번 화재 진압에도 무려 10시간이나 걸렸다.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면 속수무책이다. 땅 밑이라는 특성 때문에 통신구 내부에 불길을 차단하는 방화벽이나 연기를 밖으로 빼내는 배연 시설의 필요성이 강조됐지만, 국내 대부분의 통신구가 이런 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다.

이번에 불이 난 지하 통신구에는 소화기 한 대만 달랑 비치돼 있을 뿐이었다. 주말 당직근무 직원 2명이 제대로 대응하기에는 애초부터 어려웠다. 소방법 규정상 지하구가 500미터 이상인 곳은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돼 있으나 500미터 미만은 그런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불이 나면 크든 작든 통신이 마비되기는 마찬가지다. 화재 무방비 통신구가 전국에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각종 전화선과 광케이블이 가득 찬 통신구는 우리 사회의 신경망이자 생명선이다. 문제가 생기면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만약 테러 세력이 지하 통신구에 연쇄적으로 방화하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실제로 2013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체포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등은 서울의 KT 혜화지사를 타격 대상으로 삼아 사회 혼란을 노렸다는 국정원 녹취록이 공개됐다. 지하 통신구 방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