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로제의 보완을 위해 여야가 합의했던 탄력근로제 확대의 연내 입법이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달 하순 여야 5당 원내대표는 관련 법안의 연내 처리에 합의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계 동의 없는 국회 처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여당이 당초 합의를 깨고 법안 심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보완책도 없이 '6개월 처벌유예' 기간이 끝나는 상황을 맞게 됐다. 내년부터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의 처벌을 받게 된다. 처벌을 피하려면 공장 가동 시간을 줄이고 매출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 연구개발이 지장을 받고 납기 맞추기가 힘들어지는 사태가 속출할 것이다. 여야가 어렵게 도출한 합의가 대통령 한마디에 없던 일이 되고 숱한 기업들이 범법자가 될 지경에 몰렸다.

편의점 출점(出店) 규제도 대통령 지시로 뒤집혔다. 공정위는 지난 7월 새 편의점을 차릴 때 다른 편의점과 거리를 50~100m 이상 두게 하는 '자율규약'을 승인해달라는 편의점산업협회 요청을 '담합'이라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편의점 과밀 문제를 해소하라"고 지시하자 갑자기 입장을 180도 바꿔 업계 요구를 받아들였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타격을 받은 편의점 업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고 불과 몇 달 전 정부 결정을 뒤집었다. 과당경쟁을 막는다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편의점이라도 차려 생계비를 벌려는 은퇴자나 예비 창업자들은 시장 진입을 봉쇄당하게 됐다.

금융 당국은 당초 합법 판정을 내렸던 삼성 계열사의 회계 처리를 불법이라고 뒤집어 투자자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대통령의 지시 닷새 뒤 갑자기 신용카드사 팔을 비틀어 수수료를 1조4000억원 깎아주는 반(反)시장 조치가 나오기도 했다. 주택사업자등록 혜택 요건과 전세보증 소득 제한 규제도 뒤집혔다. 다수 국민의 이해가 걸린 중요한 정책이 손바닥처럼 뒤집히고 있다.

정부 정책은 무엇보다 공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살릴 수도, 망하게 할 수도 있는 정책이 언제 뒤집힐지 모르면 기업을 하기 어렵다. 정책이 어디로 튈지 불확실한 나라에선 기업인은 사업 계획조차 세우기 힘들고 국제 비즈니스 사회에선 투자 기피 대상국으로 분류된다. 얼마 전 외국 기업 단체들의 집단 반발도 정부의 독주와 정책 불안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제 한국도 대통령 말 한마디로 주요 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수준은 벗어나야 한다.